K-뷰티는 지난해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제 시작이다. 세계 곳곳에서 든든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을 글로벌 브랜딩 전문가에게 들어본다. <편집자주>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단순히 미국이라는 단일 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가치가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미국의 뷰티 트렌드는 한국 중국 일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 십 수년간 K-뷰티가 중국에서 호황을 누렸음에도 중국을 벗어나 다른 나라로 그 영향력이 확산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소비자들이 중국의 뷰티 트렌드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다른 여러 산업군에서도 그렇지만 뷰티 부문의 소비 트렌드는 잡지, 뉴스와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는 물론 뉴미디어인 SNS와 아마존 플랫폼 등을 타고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확산된다. 미국에서 유의미한 성공은 다른 국가로 진출하는 데 있어 좋은 지렛대가 된다. 미국 뷰티 시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미국 여성들이 진짜 스킨케어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한국보다 선진국인 미국 사람들이 스킨케어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들이 스킨케어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미국 소비자들은 스킨케어보다는 메이크업에 더 치중해 왔다. 그들에게 스킨케어는 몸을 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씻고(Cleansing), 보습제를 발라주는(Moisturizing)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면서 피부 트러블, 특히 ‘마스크네(마스크로 인한 여드름)’ 문제가 부각되었다. 이에 따라 각질제거제(Exfoliator), 여드름 패치(Pimple Patch) 등 피부 트러블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 제품부터 피부 트러블의 원인을 예방하기 위한 저자극 클렌저, 더 나아가 건강한 피부를 위해 매일 사용할 수 있는 보습제와 선크림 등 스킨케어 루틴을 실천할 수 있는 제품들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또한, 재택근무와 외출 자제 등으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메이크업보다는 피부 건강과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었다.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와 같은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스킨케어 관련 콘텐츠는 미국 소비자들의 이러한 관심과 구매 욕구에 불을 질렀고, 이는 스킨케어 제품의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특히 더마코스메틱 등 저자극 스킨케어 제품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이러한 트렌드는 인플루언서들의 영향으로 더욱 가속화되었으며,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스킨케어 루틴과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면서 스킨케어에 대한 관심이 전 연령대로 확산되었다.
건강한 스킨케어 루틴의 시작
요즘 미국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건강한 스킨케어 루틴은 자신의 피부 타입에 적합한 제품을 선택하고, 아침 저녁으로 올바른 방법으로 꾸준히 관리해 주는 것이다. 이런 건강한 스킨케어 루틴을 찾는 미국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급성장한 브랜드가 바로 ‘세라비(CeraVe)’다. 그렇다고 한국 여성들처럼 10단계나 되는 스킨케어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니다. 밤 늦은 시간 집에 돌아와 클렌징 티슈를 이용해서 메이크업을 대충 지우던 ‘귀차니스트’였던 그녀들이 이제는 클렌징 오일을 이용해 깨끗하게 메이크업을 지우고 보습제까지 꼼꼼하게 바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여름철이나 야외활동이 있을 때나 바르던 귀찮은 선크림을 매일 아침마다 잊지 않고 챙겨 바른다. 미국 소비자들의 진짜 스킨케어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 여성들의 스킨케어 루틴에 스며들기 시작한 Korean Skincare
아마존에서 검색창에 나라 이름을 쳤을 때 스킨케어 아이템이 자동완성으로 제안되는 경우는 한국(Korean)이 유일하다. 한국 선크림(*미국에서는 Sunscreen), 한국 클렌저, 한국 모이스처라이저, 한국 페이스 마스크 등이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미국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스킨케어 루틴을 구성할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한국 제품을 구매 고려 대상에 올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한국의 클렌저
아마존의 클렌저 부문 베스트셀러를 보면 아누아 클렌저를 비롯하여 마녀공장, 조선미녀, 바닐라코까지 한국 클렌저 제품이 무려 10여개가 상위 랭커에 이름이 올라 있다.
한국 클렌저들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효과를 본 것일까? 물론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SNS 마케팅을 안 하는 브랜드가 어디 있을까? 그것만으로는 한두개도 아닌 이 많은 한국의 클렌저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건강하게 피부를 관리하기 위해 저자극 스킨케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미국 소비자들에게 ‘내추럴 성분을 이용한 저자극 제품’이라는 기대치가 형성되어 있던 한국 화장품들이 매력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2010년대 중반부터 화제가 되며 널리 확산되었던 ‘10 steps Korean Skincare Routine’에 대한 스토리와 2020년 전후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에서 직접 확인한 한국 여성들의 결점 하나 없이 깨끗한 유리처럼 매끈한 피부(미국에서는 이걸 Glass Skin이라고 한다)는 미국 소비자들의 한국 화장품에 대한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왜 한국 선크림을 선택하기 시작했을까?
클렌저뿐 아니다. 한국 선크림도 미국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아마존에서 ‘Korean something’으로 검색했을 때 맨 첫머리에 등장하는 아이템이 선크림이다. 일본의 선크림도 있고 현지의 선크림도 있을텐데 유독 한국 선크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언제부터일까?
미국에서 대표적인 선스크린 브랜드 중 하나는 존슨앤존슨과 뉴트로지나다. 한국의 아모레퍼시픽이나 LG와 같은 기업들이다. 2021년도에 이 브랜드들의 선스크린 제품들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면서 모두 리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사용해 봤을, 인지도 높은 대중적인 제품들이 문제가 되면서 안전한 선크림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그동안 생활용품처럼 큰 고민 없이 습관적으로 구매하던 선크림에 대해서 다양한 정보와 제품들을 비교 탐색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의 관여도가 높아졌다.
마침 문제가 된 2021년은 코로나19 종식 이후 사람들이 마스크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고, 미국 내에서 유튜브에 이어 틱톡의 영향력이 급증하던 때였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같은 SNS 플랫폼을 통해 한국 선크림 등 한국제품들이 많이 소개되기 시작했고, 이는 새로운 선크림을 탐색하고 있던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한국 선크림이 그 대안 중 하나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안전한 선크림을 찾고 있던 미국 소비자들에게 한국 선크림은 눈시림도 없을 만큼 자극이 없는 데다 백탁도 없고 가벼우면서도 촉촉하기까지 한 놀랍고 혁신적인 제품으로 평가됐다. 거기에 착한 가격으로 가성비까지!
또한 코로나를 거치면서 미국의 메이크업 트렌드는 한마디로 ‘No Makeup Makeup’이라고 통용되는 미국식의 내추럴한 메이크업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특별한 상황에 맞춰 주목을 끄는 ‘글램룩’과 같이 화려하고 이목구비를 강조하는 파티 메이크업이 주류였다면 2020년대에는 자연스러운 데일리 메이크업이 힘을 얻으면서 미니멀한 라이프스타일까지를 포함하는 클린걸(Clean Girl)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다.
메이크업에도 스킨케어적인 요소들이 적용되면서 과거의 매트한 스타일에서 촉촉하고 글로우한 표현으로 트렌드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렇게 트렌드가 변화하면 선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색으로 혈색을 주는 형태의 메이크업들로 바뀌게 마련이다. 이런 메이크업의 변화와 맞물려 데일리로 선크림을 바르고 가볍게 터치하는 메이크업을 하게 되는 상호연관성을 갖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백탁이 없고 라이트한 제형에 촉촉한 한국 선크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미국에서도 선스크린이 생활용품에서 뷰티템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여러 유명한 선크림 브랜드를 제쳐두고 조선미녀의 선크림이 뜬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알고리즘과 연관이 있는데 한국화장품을 찾는 사람은 또다른 한국화장품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 이미 호감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조선미녀의 붓글씨로 쓴 한글로고는 아름다워 보였고 그들의 시선을 잡는 데 효과적이었다. (정작 한국 사람들은 ‘한글’이 가진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 콘셉트 원료로 쌀(RICE)을 적용한 것도 주효했다. 쌀은 서양인들에게 가장 대표적인 동양의 식물 원료인데다 건강에 좋으며 다이어트에도 좋은 건강한 재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덕분에 한국의 저자극 선크림이라는 기대치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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