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원종원의 커튼 콜 국내 창작 뮤지컬이 라이선스 뮤지컬로 탈바꿈돼 금의환향하다_뮤지컬 투란도트
이충욱 기자 | culee@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2-12-30 06:00 수정 2022-12-30 06:00

뮤지컬 투란도트 공연사진(사진제공-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강추위다. 창 밖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겨울왕국이다. 지난 여름의 뜨거움을 떠올리는 것이 이 추위를 이기는 데 좀 도움이 될까 모르겠다. 여름이면 뮤지컬로 뜨거운 도시가 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바로 딤프(DIMF)가 열리는 대구광역시다. 지난 2년여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던 이 축제가 올해 16회를 맞아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축제에 참여하는 작품들 모두 면면이 반가운 존재들이지만 올해는 특히 개막작이 시선을 끌었다. 창작 뮤지컬로 대구에서 사랑받던 ‘투란도트’를 슬로바키아에서 다시 각색해 내한무대를 선보였다. 대형 공연장의 인기 뮤지컬의 경우 대부분 외국 원작의 작품들이어서 ‘재주를 한국인이 피우고, 돈은 외국 원작자들이 챙긴다’는 곱지 않은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번 공연은 우리나라 뮤지컬계가 역으로 공연권을 수출해 다시 우리 무대에서 선을 보이는 금의환향의 사례로 부를 만한 사건이어서 흥미롭다. 성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의 현재를 반영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던 무대였다.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오페라가 원작이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아름답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공주 투란도트와 그녀를 보고 단번에 사랑에 빠진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다. 오페라에서는 공주와 결혼하려면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과제가 등장한다. 문제를 풀면 사랑을 얻을 수 있지만 실패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운명적 상황이 동양 문화에 대한 서양인들의 호기심과 맞물려 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흔히 ‘공주는 잠 못 들고’로 잘못 알려진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는 원래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의미다. 내기에서 이기지 못해 화가 난 투란도트 공주에게 칼라프 왕자는 자신의 이름을 건 마지막 내기를 하게 되고, 그래서 새벽의 약속된 시간 안에 왕자의 이름을 알아낼 때까진 그 누구도 잠들어서는 안된다고 선언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은 명을 달리한 이탈리아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로 글로벌한 인지도와 사랑을 받았었다.


뮤지컬 투란도트 공연사진(사진제공-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뮤지컬의 줄거리는 오페라와 뿌리를 같이 하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조금 다르다. 막이 오르면 전쟁에 패한 티무르 왕이 아들 칼라프 왕자와 어린 여시종 류와 함께 등장한다. 알 수 없는 미지의 땅을 헤매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바닷속 왕국인 ‘오카케오마레’. 출구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칼라프는 우연히 아름다운 공주 투란도트를 보게 되고 한눈에 반해 그녀의 사랑을 차지하고 싶다는 야망을 갖게 된다. 

문제는 투란도트 공주가 어머니의 저주로 인해 단 한 번도 사랑을 경험해보지도 혹은 느끼지조차 못하는 존재라는 것. 오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주는 자신과 결혼하려면 목숨을 걸고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구애했던 수많은 왕자들은 단 한 개의 수수께끼도 풀지 못한 채 그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칼라프 왕자는 과연 미궁의 수수께끼를 풀고 투란도트의 사랑을 얻게 될까. 그리고 투란도트 공주는 칼라프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왕자를 짝사랑하는 시종 류는 끝까지 왕자의 이름을 비밀로 하고 자신의 목숨으로 왕자를 지켜낼까. 뮤지컬 ‘투란도트’를 통해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다.

뮤지컬에서는 오페라가 아닌 뮤지컬만의 음악과 시도들이 등장한다. 전술했듯이 이야기 배경은 바닷속 가상의 세계인 ‘오카케오마레’로 바뀌었고 노래들도 모두 새롭게 변화됐다. 제작진의 면면을 보면 더욱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 ‘싱글스’ 등으로 유명한 장소영 음악감독과 ‘로미오와 줄리엣’ ‘애니’ ‘소나기’ 등을 만든 유희성 연출이 우리말 초연 무대에서 콤비를 이뤘기 때문이다. 제작은 대구에서 이뤄졌지만, 지역의 작품이라기보다 대한민국 정상급 제작진이 참여해 빚어낸 공동의 산물이라 인정할 만하다.

배우들의 연기나 무대,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무대 배경 등도 수준급의 완성도를 보여줬다. 특히 개인적으로 제일 크게 박수 보내고 싶은 것은 음악적 완성도다. 요즘 가장 바쁘다는 장소영 작곡의 세심한 배려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눈앞이 침침해... 하지만 뚜렷해져, 저 먼 곳은”이란 가사가 등장하는 티무르의 노래나 “오직 나만이”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할 수 있다는 4중창은 꽤나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감상을 남긴다. 중장년층 관객이라면 절로 한숨마저 쉬게 만드는 절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현대 문화산업 콘텐츠들이 지니고 있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매력은 이번에 내한한 슬로바키아 버전의 뮤지컬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페라에서 기인한 중국풍의 이미지 대신 현대적인 실험과 도전의 정신이 가미됐다. 덕분에 칼라프 왕자는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등장하고 여시종 류는 너댓개의 가방을 이고 지고 다니는 모습으로 구현된다. 요즘 관객들에게도 적절히 소구될 수 있는 재해석의 묘미가 색다른 맛을 잉태해낸다.

아크릴로 치장된 세트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적막한 바닷속으로 변하기도 하고, 혹은 황량한 투란도트의 마음같은 차가운 푸른 빛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연극적 요소를 한층 강화한 극 전개는 압축되고 축약됐던 우리말 원작보다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하고 설명적인 연극적 틀거리로 대체됐다. 붉은 넥타이와 흰 양복 차림의 피에로들은 서양 극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광대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무엇보다 같은 뿌리에서 다른 열매를 맺는 유연한 사고와 예술적 실험의 결과물이 무대를 즐기는 재미를 여실히 느끼게 한다. 

지난 여름 딤프에는 영국산 주크박스 뮤지컬인 ‘더 콰이어 오브 맨’, 새로운 창작 뮤지컬인 ‘산들’과 ‘인비저블’, ‘봄을 그리다’, ‘브람스’, ‘메리 애닝’ 그리고 초기 개발단계인 독회(Reading) 공연들과 대학생 뮤지컬 작품들이 선을 보였다. 초기 개발단계의 여러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재미는 물론 딤프가 지닌 흥미로운 속성이지만 역시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국적의 작품들을 축제기간에 만날 수 있다는 비교불가한 이 축제만의 묘미다. 코로나 19로 잠시 멈췄던 대구 뮤지컬 축제는 올해를 기점으로 다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문화예술계의 입장은 물론 지역의 균형발전이나 특화 전략이라는 측면에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관계자들에게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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