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박병준의 클래스토리 고별의 기록
이충욱 기자 | culee@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2-08-05 05:58 수정 2022-08-05 06:00
“죽은 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한 때 살았었으므로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최인호)

우리는 수많은 영원한 이별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삶이 유한하니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별을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게 되는 것이겠지요. 누군가의 마지막 기록은 그가 한 때 살았었음을 더없이 선명하게 각인시키기에 더 애틋하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떤 음악가의 마지막 작품 혹은 마지막 연주 기록은 설사 그 완성도에 약간의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특별하게 남아있지요.

음악가들의 고별의 기록을 이야기할 때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D. Lipatti, 1917-1950)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을 것입니다. 루마니아 출신인 리파티는 천재적인 음악성을 발휘했지만 불행하게도 20대 중후반부터 아프기 시작했는데 결국 1947년 호지킨 림프종(Hodgkin’s Lymphoma, 신체의 면역 기능을 담당하는 림프계에 발생하는 암)을 진단받게 됩니다. 그리고 1950년 12월, 고작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지요.

현재는 이 병의 완치율이 높지만 리파티 생전에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개발되기 전이었습니다. 리파티는 1950년 5월, 류마티스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코티손(Cortisone) 주사를 맞기 시작하였고 일시적으로 회복되어 여름에 열흘이 조금 넘었던 녹음 일정을 소화해냅니다. 하지만, 이 주사는 근본적인 치료약이 아니었고 이 주사를 계속해서 맞을 수도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는 코티손 주사를 이용한 치료를 두 달 이상 지속할 수 없으며 그 효과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고 그의 주치의가 월터 레그(W. Legge, 1906-1979, 레코딩 프로듀서)에게 알렸던 것에서도 알 수 있죠.

1950년 여름이 지나며 리파티의 상태는 다시 악화되었습니다. 그리고, 9월 16일, 리파티는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도시 브장송에서 열린 독주회 무대에 오릅니다. 프로그램은 바흐의 파르티타 1번, 모차르트의 소나타 8번, 슈베르트의 즉흥곡 2곡, 그리고 쇼팽의 왈츠 14곡이었지요. 리파티에 대해 중요한 글들을 쓴 마크 에인리(M. Ainley)에 따르면 연주 당일 오전 리허설 때만 해도 리파티의 상태는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서 리파티는 고열과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주치의는 연주회를 취소하라고 하죠. 취소를 원하지 않았던 리파티 자신도 연주를 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연주홀이 연주 시작 두 시간 전에 청중들로 이미 꽉 찼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결국 연주를 하기로 결정하고 몇몇 주사들을 맞은 후 연주홀로 향했습니다.


마지막 연주회에서의 디누 리파티 (사진: Michel Meusy)

리파티는 이 연주 2주 후에 있었던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시 몸이 너무 약해서 연주 한 시간 전에 전체 프로그램의 고작 절반만을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음을 밝혔습니다. 이는 연주 취소를 고려했다는 상황과 어쩐지 모순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데 리파티가 밝힌 연주 한 시간 전의 상태는 고열에 시달리다가 몸이 그나마 조금 나아졌을 때였습니다. 연주홀에 도착한 그는 계단도 아내와 주치의의 도움으로 오를 정도로 약했지요. 이 상황에서도 연주는 프로그램의 거의 끝까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인 쇼팽의 왈츠 한 곡을(Op. 34 No. 1) 마저 연주할 여력이 그에게 남아있지 않았지요. 리파티는 일단 연주를 시작했지만 곧 멈추었고 무대에서 퇴장합니다. 그리고, 홀은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지요. 다시 등장한 리파티는 쇼팽의 왈츠 대신 그가 언제나 첫번째 앙코르로 연주했다는, 바흐의 칸타타 147번 중 합창곡(Choral) “예수는 나의 기쁨되시니(Jesus bleibet meine Freude)”의 피아노 편곡버전을 연주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그 날의 연주가 마무리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 이 연주회를 리뷰한 두 개의 지역 신문에 따르면 리파티는 총 3개의 앙코르를 연주했다고 합니다. 3개의 앙코르 모두 바흐의 작품이었고요. 다른 두 앙코르가 어떤 곡이었는지 밝혀지지는 않았는데 “예수는 나의 기쁨되시니”가 그 날의 유일한 앙코르가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곡이 유일한 앙코르는 아니었지만 원곡이 ‘예수가 나의 기쁨이며, 내 마음의 위안이자 생명수이고, 내 삶의 힘’이라는 고백적인 가사를 포함하고 있기에 이 앙코르가 주는 울림이 특히 남다르지 않았을까 합니다. 병마에 쇠약해진 리파티가 이 곡을 연주했을 때 청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그리고, 그 때 리파티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가 즐겨 연주했던 앙코르였지만 그 날의 앙코르는 그에게 더 특별했을까요? 너무 아쉽게도 이 앙코르들은 녹음되지 못해서 그 날의 이 울림은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연주회가 리파티의 마지막 연주회로 남았기에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을 대신한 “예수는 나의 기쁨되시니”를 두고 ‘곧 다가올 죽음을 예감했던 그의 마지막 연주’라는 식의 의미부여도 있어 왔습니다. 실제로 이 연주 후 3개월이 채 못되어 리파티는 세상을 떠났지요. 그런데, 사실 리파티는 그 날의 바흐 연주가 청중 앞에서의 자신의 마지막 연주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는 앞으로의 연주와 녹음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으니까요. 또, 그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바흐의 작품 하나를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이 앙코르가 그날의 유일한 앙코르도 아니었고요. 그러니 우리는 그 앙코르의 순간을 어쩌면 조금은 과장된 감정으로 상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과장을 걷어내더라도 병마에 약해질대로 약해진 몸을 다그치며 이루어낸 그 날의 연주는 여전히 더없이 숭고하게 다가옵니다. 또, “예수는 나의 기쁨되시니”가 연주된 순간은 여전히 몇 마디의 말로는 감히 섣불리 묘사하기 힘든 그런 순간이라고 상상하게 되지요.

이 연주회 실황은 후에 음반으로 발매되었습니다. 곡을 시작하기에 앞서 리파티가 몇 개의 화음을 아르페지오(Arpeggio: 분산화음)로 부드럽게 연주하는 모습이 흥미롭지요. 연주는 눈부시지만종종 숨이 조금 가쁜 듯한 인상을 주며 실수도 들리곤 하는데 이는 그 날 리파티의 상황을 먹먹하게 그려보게 합니다. 짧은, 하지만 빛나는 한 때를 살았었던 리파티. 그와 레코딩 작업을 함께 했던 월터 레그가 리파티에 대해 했던 말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신은 우리가 디누 리파티라고 부른, 당신이 선택한 악기를 너무 짧은 시간 동안 이 세상에 빌려주었다.”

추천영상: 본문에서 언급한 대로, 그의 마지막 리사이틀에서 연주했던 바흐의 “예수는 나의 기쁨되시니”는 녹음되지 못했습니다. 그 점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마지막 리사이틀이 열리기 두 달 전 즈음에, 그가 병에서 일시적으로 회복되었을 때 이 곡을 녹음한 음원을 소개합니다. 평소 즐겨 연주하던 곡임에도, 리파티는 녹음 당시 그 자신이 만족한 버전이 나올 때까지 반복에 반복을 거듭했다고 하지요. 차분한 진행 속에 명상적이고 경건한 느낌이 인상적인 이 음원을 감상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2JJlYr1a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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