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 국악 Prologue! 전통으로 전통 만들기
이충욱 기자 | culee@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2-07-08 05:58 수정 2022-07-08 06:00
오래 묵은 것들이 위안을 줄 때가 있다.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골목길, 어김없이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 같은 세월을 건너며 오래도록 곁을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나달나달 낡아가는 손때 묻은 물건들. 세월의 풍파에 휩쓸리지 않고 제자리, 제 모습을 지키는 것들이 주는 안정감과 안도감이 그리울 때가 많다.

오래된 음악 역시 그러하다. 유행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도, 놀라운 실험 정신을 발휘하거나 화려한 무대 효과를 동반하지 않아도, ‘고담하고 소박하게’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는 음악들이 있다. 다시 찾아온 봄, 전통 음악 레퍼토리로 노상 꿋꿋이 이어온 공연들을 만나보자.

부산, 토요신명

국립부산국악원은 개원 이듬해인 2009년부터 토요 상설 공연을 열었다. 지역민에게는 전통 예술 향유의 기회를 선사하고 부산을 찾는 관광객에게는 지역의 유구한 문화유산을 선보이기 위함이었다. 소규모 인원으로 구성한 악․가․무 종합 프로그램으로 초심자나 외국인 관광객 등 국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고, 공연 종목의 구성을 달리해 여러 번 관람하는 사람들도 레퍼토리를 골라 볼 수 있도록 했다.


매주 다양한 국악공연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토요신명 2022'(사진-국립부산국악원)

2022년 <토요신명>은 ‘한국의 무형문화유산’, ‘교과서 속 전통음악과 춤’, ‘영남의 풍류’, ‘궁중 음악문화의 숨결’, ‘미래의 전통, 창작의 멋’ 등 다섯 가지 주제로 상반기 공연을 꾸린다. 눈여겨볼 만한 테마는 지역의 춤과 음악으로 구성한 제3주제 ‘영남의 풍류’다. 영제 시조, 영남 민요, 동래 학춤과 한량무 등 영남 지역 문화재를 무대화하는 데 주력해온 국립부산국악원 연주단의 비기를 살짝이나마 맛볼 수 있는 공연이 아닐까 싶다.

국립부산국악원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남짓한 공연의 실황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2016년부터 2020년 공연까지는 ‘토요상설’ 재생 목록에, 2021년 이후 공연은 ‘슬기로운 온라인 국악생활’ 재생 목록에 올라가 있다. 한편, 토요신명이 있는 그대로의 국악을 조금씩 다양하게 구경해볼 수 있는 공연이라면, 매주 수요일에는 보다 기획력이 가미된 공연들이 <수요공감>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오른다. 전통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무대로, 색다른 국악 공연을 경험하고 싶다면 수요일 저녁에 국립부산국악원 소극장인 예지당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광주, 광주국악상설공연

광주광역시가 2019년부터 이어온 <광주국악상설공연>은 시립국악관현악단과 시립창극단을 비롯해 지역 국악 단체가 대거 참여하는 명실상부 광주의 ‘대표브랜드’ 공연이다. 광주세계광엑스포 주제관을 개조해 마련한 상설 공연장에서 열리며, 관람료는 무료다. 올해도 시립예술단과 함께 창작국악단 도드리, 타악그룹 얼쑤, 판소리예술단 소리화 등 10개 단체가 친근하고 신명 나는 국악 레퍼토리를 준비해 무대에 오른다.

‘광주에 오면 꼭 봐야 할’이란 수식어에서 이 공연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기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행과 공연의 일정을 두루 고려하기는 쉽지 않지만,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5일간 오후 5시에 어김없이 열리는 공연이라면 광주에 들른 관광객이라도 관람 계획을 세우기가 한결 수월하겠다.
광주문화예술회관 누리집의 국악상설공연 페이지와 광주문화예술회관 유튜브 채널에서 대부분의 공연 실황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광주에는 광주전통문화관의 토요 상설 공연, 빛고을전수관의 목요 상설 공연 등이 연중 개최되고 있으니 언제 어느 때라도 국악 공연을 즐기기 좋다.

서울, 산조대전

기악 독주곡인 ‘산조’에 대해서는 지난해 이맘때쯤 국악 프롤로그 지면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혹독한 추위 끝에 맞이하는, 변화무쌍한 봄날의 불안과 설렘만큼 산조와 어울리는 계절이 또 있을까. 


중견 및 신예 연주자들이 선보이는 '산조대전' 공연(사진-서울돈화문국악당)

봄볕이 세상을 녹이기 시작하는 이즈음, 서울돈화문국악당 무대에 오르는 <산조대전>은 오롯이 산조만을 만끽해볼 수 있는 공연이다. 3월 16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보름간의 일정이 빼곡하다. 가야금․거문고․대금․해금․피리․아쟁 등 악기별로 다양한 유파가 명맥을 이어온 산조부터 훈․퉁소․생황 등으로 새롭게 창작해 연주하는 산조까지, 중견 연주자의 관록과 신예 연주자의 패기가 빚어내는 산조의 면면을 심도 있게 탐구할 수 있는 기회다. 

연주자와 고수의 호흡뿐 아니라 청중의 추임새와 감탄사도 산조 공연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140석 규모의 국악 전문 공연장으로 자연 음향을 지향하는 공간이다.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가깝고 음향 기기의 사용을 최소화하여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산조대전은 단출한 공간에서 연주자와 고수, 청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을 경험할 기회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도 한 달여간 마흔여섯 개의 산조가 무대에 오르는 공연을 기획한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유튜브 채널에 ‘산조의 정석’이란 제목의 8개 영상을 게시해두었다. 초심자이지만 산조 공연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영상을 통해 산조의 정석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보고 공연장으로 가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올해로 2회째 접어든 산조대전이 매년 봄, 산조 공연의 전통을 이어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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