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 원종원의 커튼 콜 동화속 이야기를 성인용 뮤지컬로 환생시키다_뮤지컬 난쟁이들
이충욱 기자 | culee@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2-06-24 05:58 수정 2022-06-24 06:00

뮤지컬 난쟁이들의 공연사진(PMC프로덕션 제공)

‘골 때리고, 기상천외하고, 적나라하고, 익살스런’ 재미는 작은 뮤지컬들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다. 요즘 MZ세대들, 특히 공연 좀 좋아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창작 뮤지컬 ‘난쟁이들’은 바로 그런 매력이 듬뿍 담겨있는 무대다. 

물론 제목은 ‘백설공주’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 난쟁이들이 주인공이라서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무대에선 소극장 뮤지컬의 재미를 담아내기 위해 동화속 이야기의 재연을 넘어서는 파격과 실험이 등장한다. 줄거리 자체가 기발하고 발칙하다. 주인공인 찰리는 공주와 만나 인생 역전을 이루겠다고 꿈꾸는 야심찬 난쟁이이다. ‘백설공주’를 만난 후 오매불망 그녀를 잊지 못하는 할아버지 난쟁이 빅과 함께 숲 속의 마녀를 찾아가 인어공주에게 그랬던 것처럼 ‘긴’ 다리를 만들어주는 마법의 약을 얻는다. 이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3일. 그 안에 공주와의 키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얻지 못하면 인어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거품이 되고 만다. 그로부터 뮤지컬에는 난쟁이들의 공주 ‘꼬시기’ 프로젝트와 촌철살인의 유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실 ‘백설공주’를 무대에서 활용한 창작 뮤지컬이 이 작품이 최초의 시도는 아니다. 공주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일곱 난쟁이 중 한 명인 반달이의 이야기를 그린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도 이미 큰 인기를 누렸던 대표적인 창작 뮤지컬이다. 줄여서 말하기 좋아하는 요즘 세대들에겐 ‘백사난’이라는 애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눈물 쏙 뺄 만큼 애틋하고 아름다운 짝사랑 이야기로 관객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경우다. 

엇비슷한 소재의 무대지만, 창작 뮤지컬로 다시 만들어진 ‘난쟁이들’은 ‘백사난’과는 사뭇 다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훨씬 직설적이고 과감한 접근을 보여주는 탓이다. 무대에는 시종일관 19금의 외설스런 대사와 직설적인 표현들이 걸러지지 않은 채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공연의 부제로 쓰인 홍보문구 역시 ‘어른이 뮤지컬’이라는 익살스런 표현이다. 어린이의 ‘린’에 X자를 긋고 새롭게 ‘른’이란 단어를 써놓았던 적도 있다. 마음의 준비가 된 ‘어른’ 관객만 미리 그런 작품이란 것을 이해하고, 충분히 인지하고 그리고 알아서 보러 오시라는 재미난 마케팅 전략이 담긴 홍보문구다.

소극장 뮤지컬답게 설정 자체가 이미 파격이고 가히 충격이다. ‘난쟁이들’은 동화속 판타지 대신 현실적인 재해석들을 과감히 덧붙여 뼈있는 웃음을 선보인다. 여장남자 배우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막맡은 쏟아내는 천방지축 공주 ‘신데렐라’는 진정한 사랑보다 재력을 더 따지는 속물로 그려져 있고, ‘백설공주’는 보석탄광에서 삽질을 하며 꿈틀대는 근육을 자랑하던 난쟁이들의 남성미를 잊지 못하는, 야한 남자를 좋아하는 색녀로 그려진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우스꽝스럽고 허접스러운 왕자들은 ‘끼리끼리’를 노래하며 연인관계에서는 신분과 계급이 중요하다며 요즘 세태를 풍자하고 우스꽝스레 노래한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들이지만 폭소 속에 담겨있는 ‘뼈 있는’ 현실이라는 뼈 한 조각이 이 작품만의 별스런 재미와 묘하게 거슬리는 웃음을 성공적으로 완성해낸다. 

뮤지컬 ‘난쟁이들’은 코미디 뮤지컬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코미디가 뮤지컬 장르에서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특성을 보인다. 공연장 나들이라는 것이 흔한 체험도 아닐뿐더러 연극인들이 주축이 돼 작품을 만들고 대중들에게 선보이다보니 진지하거나 예술적 체험에 방점을 둔 작품으로서의 오히려 더 선호돼서 생긴 현상이다. 그러나 브로드웨이나 웨스트 엔드 같은 서구 사회에서 뮤지컬은 텔레비전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인기를 누려왔던, 그래서 하루의 피로를 덜어줄 여가거리로서의 정체성을 지녀 오히려 코미디가 더 인기인 대중문화의 산물이자 첨단의 오락거리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뮤지컬 ‘난쟁이들’은 바로 그런 부류의 전형적인 코드를 담고 있는 창작 뮤지컬 작품이다. 일상의 번잡스러움을 잊고 가볍게 즐기기에 조금의 아쉬움도 없다. 특히 뮤지컬하면 서양의 드레스 입은 궁중 무도회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라면 꼭 공연 관극을 추천하고 싶을 만큼 독특하고 유별난 재미와 기발한 웃음을 잘 담고 있다. 서울 충무아트홀에서의 초연에 이어 얼마 전 대학로로 무대를 옮겨가면서 익살과 개그, 대놓고 얘기하는 적나라한 풍자의 재미를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복잡할 것 없이 그냥 웃고 즐기기에 이만한 재미가 담긴 작품은 또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2022년 앙코르 버전의 ‘난쟁이들’은 소극장 뮤지컬이지만 꽤나 화려한 캐스팅을 선보이고 있다. 팬텀싱어 출신으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기세중과 뮤지컬 배우 최민우가 난쟁이 찰리 역으로, 안정적인 연기와 가창력을 선보이는 조풍래, 류제윤, 황두헌이 할아버지 난쟁이 빅으로 등장한다. 인어공주 역의 조윤영과 정우연, 백설공주의 문진아와 한보라도 웃음을 보내기에 아쉬움이 없다.

그래도 제일 배꼽잡게 만드는 것은 역시 왕자 1, 2, 3으로 등장하는 영오, 선한국, 서동진이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익살스레 풍자하고 뼈있는 농담을 더한다. 고개를 들어 콧대를 한껏 높이고 감정을 자제한 채 콧소리로 잘난 체 대사를 읊는 모습 자체가 중독성이 있는 익살이요 풍자다. 극장을 나서며 말타고 달리듯 흉내내는 관객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체험이다. 잔상이 오래 남는 올해 최고의 소극장 뮤지컬 캐릭터들이다.

무대가 작아서 극적 상상력이 제한적일 것이라 생각한다만 이만저만한 오해가 아니다. 오히려 작은 뮤지컬들은 다양하고 도전적인 내용을 펼치기 좋은 실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소극장 출신의 연출가나 배우가 그때의 경험을 잘 살려 스타 반열에 올라서는 일도 낯설거나 드물지 않다. ‘지하철 1호선’이나 ‘사랑은 비를 타고’가 우리나라 뮤지컬계에서 배우 사관학교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입장권 가격이 낮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연인과 함께 봄나들이로 극장을 찾는 것은 꽤나 근사하고 오래 기억에 남을 문화예술의 체험이 될 수 있다. 한참 웃다보면 세상이 행복해 보이는 것도 소극장 뮤지컬이 주는 마법의 효과다. 만끽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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