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박병준의 클래스토리 주말의 명화와 오페라
이충욱 기자 | culee@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2-06-10 05:58 수정 2022-06-10 06:00
외국어를 익히는 데 도움을 주는 대표적인 매체 중 하나가 바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를 이용해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가르치는 강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그런 강의를 통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외국어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지요. 필자가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갔을 때도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며 독일어와 영어를 더 빨리 습득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당시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헐리우드 영화를 오스트리아의 극장에서 보면 대사는 영어로 나오고 자막은 독일어로 나올 테니 독일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같이 습득할 수 있겠구나!’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머지않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오스트리아의 극장에서는 비(非)독일어권 영화들이 독일어로 더빙이 된 채 상영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었지요.

이러한 시스템을 보면서 생각났던 TV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외국 영화가 성우들의 한국어 더빙을 거쳐서 방영되던 ‘주말의 명화’였지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외국 영화를 더빙을 거쳐서 보는 문화가 이제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현재 TV에서 방영되는 외국 영화들은 대부분 본래의 언어를 살리고 한글 자막이 지원되는 시스템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지요. TV에서 외국 영화를 감상하는 문화가 이렇게 바뀌어 간 것과 비슷한 변화를 겪은 음악 장르가 있습니다. 바로 오페라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베르디(G. Verdi, 1813-1901)의 오페라 ‘아이다(Aida)’나 ‘오텔로(Otello)’를 보러 간다고 할 때 그 오페라들이 한글로 공연되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원어인 이태리어로 공연되는 것을 기대하겠지요. 이렇듯 한 오페라가 어느 장소에서 공연되더라도 본래의 언어로 공연되는 관습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굉장히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닙니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Wiener Staatsoper)이나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와 같은 극장들의 아카이브를 살펴보면 이러한 관습이 1950~60년대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러시아어와 같은 동구권 언어의 오페라에 대해서는 이 관습이 적용되는 시점이 더 늦었습니다.) 그러니까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전반만 하더라도, 프랑스어로 된 오페라가 빈에서 공연될 때에는 독일어로 공연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이죠. 

실제로 원래 프랑스어로 지어진 생상스(C. Saint-Saëns, 1835-1921)의 ‘삼손과 데릴라(Samson et Dalila)’와 마스네(G. Massenet, 1842-1912)의 ‘베르테르(Werther)’는 독특하게도 각각 독일 바이마르(1878년)와 빈(1892년)에서 초연이 되었는데 두 오페라 모두 독일어로 공연되었습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출신의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가 이태리어로 지은 오페라 ‘돈 지오반니(Don Giovanni)’는 빈에서 1950년대까지도 독일어로 공연되었지요.

뉴욕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ropolitan Opera, 이하 메트)는 앞서 언급한 두 오페라 극장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여 흥미롭습니다. 1883년 창단된 메트에서는 초기에 극장장 측이 한 시즌의 모든 공연에서 사용될 언어를 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첫 시즌에는 모든 오페라들을 이태리어로 공연하였는데 그 다음 시즌에 새로운 극장장이 오자 그 언어는 독일어로 바뀌었지요.

이런 과정을 거친 메트에서는 오페라를 가급적 본래의 언어로 공연한다는 방침이 20세기 중반 이전에 이미 자리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같은 영어권에 속해 있지만 역사가 메트보다 100년 이상 깊은 로열 오페라 하우스보다 빠른 행보였지요. 


1921년부터 1929년까지 메트에서 매년 보리스 고두노프에 출연했던 샬리아핀(출처: metopera.org)

오페라 공연에서의 언어에 대한 탐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하나의 무대에서 하나 이상의 언어들이 사용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메트에서 공연된 프랑스 오페라에 대해 정리한 글에 따르면 1890년대에서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 무대에서 어떤 가수들은 프랑스어로 노래하고 어떤 가수들은 이태리어로 노래하는 상황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러시아 출신의 유명한 베이스 가수 샬리아핀(F. Chaliapin, 1873-1938)은 메트에서 무소르그스키(M. Mussorgsky, 1839-1881)의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에 출연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태리어로 부르는 와중에 혼자만 러시아어로 부르기도 했지요. 푸치니(G. Puccini, 1858-1924)의 ‘토스카(Tosca)’가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된 것은 1910년인데 당시 기록을 보면 독일어와 이태리어가 동시에 사용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는 신기하기까지 여겨지는 이러한 관습이 적용된 무대가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

여전히 현지의 언어로 공연하는 오페라 극장들이 존재하고, 러시아어나 체코어처럼 오페라 장르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언어로 된 작품들을, 어디에서나 본래의 언어로 공연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을 넘어가며 오페라를 본래의 언어로 공연하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잡은 것은 부인할 수 없겠지요.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관습이 앞으로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요? 지금은 알지 못하는 그 변화 속에 오페라가 언어의 장벽을 지금보다 더 뛰어넘어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생생한 감동을 안겨주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추천영상: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가 원어인 이태리어가 아닌 독일어로 녹음된 음반을 소개합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이 음반에는 헬렌 귀덴, 프리츠 분덜리히,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같은 명 가수들이 출연했지요. 분덜리히가 독일어로 부르는 ‘축배의 노래’를 감상해 보세요.

소프라노 헬렌 귀덴의 파트가 웬일인지 많이 삭제되어 아쉽지만 분덜리히의 아름다운 음성은 굉장히 인상적이고 독일어로 노래했다는 것은 아쉽다기 보다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분덜리히가 이태리어로 공연한 실황을 들어보면 독일어 버전보다 첫 소절이 보다 힘차게 들리는데 이는 실황과 스튜디오 녹음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면도 있겠지만, 확실히 언어의 차이가 크게 느껴져서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MMlQfxvm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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