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 공연사진(사진제공 : 모먼트메이커) 스타 배우가 선보이는 완벽한 무대만큼 반가운 무대가 바로 신인들의 열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무대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새 시즌으로 돌아온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은 신예다운 패기와 더불어 작품을 향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반갑다. 베테랑 배우들로 이끌었던 이전 시즌 공연들과 달리, 이번 사연에서는 오디션을 통해 대학로의 신인 배우들을 상당수 합류시켜 화제가 됐다. 캐스트가 공개됐을 당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으나 본격적인 막이 오르자 곧 호평이 줄을 이었다. 그만큼 여러모로 준비를 많이 한 모습이다. 뮤지컬 ‘미드나잇’은 아제르바이잔 작가 엘친 아판디예프(Elchin Afandiyev)의 희곡 ‘지옥의 시민들(Citizens of hell)’에 기반해 제작된 작품이다. 영국 라이선스 뮤지컬로 ‘액터뮤지션’과 ‘앤틀러스’ 두 버전으로 나뉘는데 전체적인 줄거리는 같아도 넘버와 가사, 무대 디자인 등 여러 면에서 꽤 다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점을 고르라면 역시 배우가 직접 악기를 다루며 연기를 하느냐에 달려있다. 2017년 초연을 올린 ‘미드나잇 : 앤틀러스’에 이어 이듬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 라이선스 뮤지컬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의 경우, 연주자가 따로 있는 ‘앤틀러스’와 달리 배우들이 연기뿐만 아니라 기타와 콘트라베이스, 퍼커션, 바이올린을 각각 맡아 연주한다. ‘액터뮤지션’은 상대적으로 단조로운 무대와 배우들의 흥겨운 라이브 연주, 역동적인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또 뒤로 갈수록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속속 드러나는 반전이 꽤 충격적인데, 그런 과정에서 인간이 가진 다양한 얼굴을 조명해 매우 흥미롭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드라마가 워낙 뚜렷한 데다 인물들의 심리 변화 역시 두드러지기 때문에 러닝타임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작품은 1937년 12월 31일, 자정을 앞둔 늦은 밤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독특하게도 등장인물 모두 이름 없이 맨과 우먼, 비지터, 플레이어, 피아니스트로 설정돼 있다. 이 중 플레이어는 총 4명이며, 각자 번호를 부여받고 오프닝과 회상 장면 등에서 역할에 맞춰 활약한다. 스탈린의 커다란 초상화가 걸린 공간에서 새빨간 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우먼)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남편(맨)을 기다리며 초조해한다. 그 와중에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이 엔카베데(내부인민위원회,NKVD)에게 강제로 끌려간다. 불안감이 더해가는 도중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리고 곧 맨이 귀가하는데, 우먼은 아직 바깥에 있는 요원들을 의식해 국가를 향한 남편의 충성심을 마치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맨이 여전히 불안한 우먼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곧 있으면 끝날 1937년의 마지막 밤을 즐기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암시장에서 몰래 입수한 음반과 샴페인을 꺼내 둘만의 파티를 즐기려던 찰나,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찾아온다. 그는 자신을 엔카베데 소속 비밀경찰이라 주장하는 낯선 남자(비지터)였다. 동료 요원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을 끌고 가다 보니 자신까지 챙겨가는 걸 잊은 모양이라던 비지터는 갈수록 더 제멋대로 굴며 맨과 우먼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지터가 방문한 이후 잘 가던 시계들이 모두 멈추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그 뒤로 세 사람의 어색한 조우는 충격적인 비밀들을 드러내며 절정으로 향한다. 등장인물들은 누군가의 고발과 감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 매일 밤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로 스탈린 치하 소비에트 연방 공산주의가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는 매일같이 피와 비명이 난무했던 공포의 시대였다. 어디서든 고발이 들어가면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곧바로 숙청 대상이 됐다. 뮤지컬 속 배경과 같은 상황이다. 의심과 불안 속에 가려졌던 진실이 끝내 거짓된 평안을 깨부수던 순간 온몸에 흐르는 전율이 여전히 생생하다. 주 무대인 아파트도 눈여겨볼 만하다. 네모난 형태의 문들만 제외하고 별다른 장치 없이 뻥 뚫린 벽으로 제한된 공간을 설정한 모습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투명하지 못했던 부부와 대비돼 더욱 아이러니하다. 이곳을 타락으로 물든 영혼과 지옥에서 지켜보는 영혼, 그리고 심판자를 자처하는 존재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로이 넘나들며 압박한다. 관객들은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의 이기심과 배신, 희생, 위선 등과 마주하며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지난 1월 19일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은 오는 3월 28일까지 계속된다. 공연장이 크지 않은 데다 좌석 사이 또한 여유롭지 않아 적잖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공연에 몰입하다 보면 금세 잊힌다. 무엇보다도 배우들로부터 전해진 신선한 에너지가 가까이서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 참 좋다. ‘미드나잇’이란 제목처럼 한밤에 내린 어둠이 빛을 가리고 모든 이들의 눈과 귀를 막았어도 여전히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실낱같은 희망을 꿈꾼다. 해석하는 바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품이 전하고자 했던 궁극적 의미는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한 비극의 페이지가 아니라 마지막 커튼콜에 담겼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번 시즌만큼은 더욱 그렇다. 영원한 멈춤이란 없듯, 끝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던 밤도 결국 밀려났다. 희망이 절실한 시기에 이 작품을 만나보길 추천하는 이유다. |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 공연사진(사진제공 : 모먼트메이커)
스타 배우가 선보이는 완벽한 무대만큼 반가운 무대가 바로 신인들의 열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무대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새 시즌으로 돌아온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은 신예다운 패기와 더불어 작품을 향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반갑다. 베테랑 배우들로 이끌었던 이전 시즌 공연들과 달리, 이번 사연에서는 오디션을 통해 대학로의 신인 배우들을 상당수 합류시켜 화제가 됐다. 캐스트가 공개됐을 당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으나 본격적인 막이 오르자 곧 호평이 줄을 이었다. 그만큼 여러모로 준비를 많이 한 모습이다.
뮤지컬 ‘미드나잇’은 아제르바이잔 작가 엘친 아판디예프(Elchin Afandiyev)의 희곡 ‘지옥의 시민들(Citizens of hell)’에 기반해 제작된 작품이다. 영국 라이선스 뮤지컬로 ‘액터뮤지션’과 ‘앤틀러스’ 두 버전으로 나뉘는데 전체적인 줄거리는 같아도 넘버와 가사, 무대 디자인 등 여러 면에서 꽤 다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점을 고르라면 역시 배우가 직접 악기를 다루며 연기를 하느냐에 달려있다.
2017년 초연을 올린 ‘미드나잇 : 앤틀러스’에 이어 이듬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 라이선스 뮤지컬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의 경우, 연주자가 따로 있는 ‘앤틀러스’와 달리 배우들이 연기뿐만 아니라 기타와 콘트라베이스, 퍼커션, 바이올린을 각각 맡아 연주한다. ‘액터뮤지션’은 상대적으로 단조로운 무대와 배우들의 흥겨운 라이브 연주, 역동적인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또 뒤로 갈수록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속속 드러나는 반전이 꽤 충격적인데, 그런 과정에서 인간이 가진 다양한 얼굴을 조명해 매우 흥미롭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드라마가 워낙 뚜렷한 데다 인물들의 심리 변화 역시 두드러지기 때문에 러닝타임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작품은 1937년 12월 31일, 자정을 앞둔 늦은 밤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독특하게도 등장인물 모두 이름 없이 맨과 우먼, 비지터, 플레이어, 피아니스트로 설정돼 있다. 이 중 플레이어는 총 4명이며, 각자 번호를 부여받고 오프닝과 회상 장면 등에서 역할에 맞춰 활약한다.
스탈린의 커다란 초상화가 걸린 공간에서 새빨간 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우먼)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남편(맨)을 기다리며 초조해한다. 그 와중에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이 엔카베데(내부인민위원회,NKVD)에게 강제로 끌려간다. 불안감이 더해가는 도중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리고 곧 맨이 귀가하는데, 우먼은 아직 바깥에 있는 요원들을 의식해 국가를 향한 남편의 충성심을 마치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맨이 여전히 불안한 우먼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곧 있으면 끝날 1937년의 마지막 밤을 즐기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암시장에서 몰래 입수한 음반과 샴페인을 꺼내 둘만의 파티를 즐기려던 찰나,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찾아온다.
그는 자신을 엔카베데 소속 비밀경찰이라 주장하는 낯선 남자(비지터)였다. 동료 요원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을 끌고 가다 보니 자신까지 챙겨가는 걸 잊은 모양이라던 비지터는 갈수록 더 제멋대로 굴며 맨과 우먼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지터가 방문한 이후 잘 가던 시계들이 모두 멈추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그 뒤로 세 사람의 어색한 조우는 충격적인 비밀들을 드러내며 절정으로 향한다.
등장인물들은 누군가의 고발과 감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 매일 밤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로 스탈린 치하 소비에트 연방 공산주의가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는 매일같이 피와 비명이 난무했던 공포의 시대였다. 어디서든 고발이 들어가면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곧바로 숙청 대상이 됐다. 뮤지컬 속 배경과 같은 상황이다. 의심과 불안 속에 가려졌던 진실이 끝내 거짓된 평안을 깨부수던 순간 온몸에 흐르는 전율이 여전히 생생하다.
주 무대인 아파트도 눈여겨볼 만하다. 네모난 형태의 문들만 제외하고 별다른 장치 없이 뻥 뚫린 벽으로 제한된 공간을 설정한 모습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투명하지 못했던 부부와 대비돼 더욱 아이러니하다. 이곳을 타락으로 물든 영혼과 지옥에서 지켜보는 영혼, 그리고 심판자를 자처하는 존재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로이 넘나들며 압박한다. 관객들은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의 이기심과 배신, 희생, 위선 등과 마주하며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지난 1월 19일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은 오는 3월 28일까지 계속된다. 공연장이 크지 않은 데다 좌석 사이 또한 여유롭지 않아 적잖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공연에 몰입하다 보면 금세 잊힌다. 무엇보다도 배우들로부터 전해진 신선한 에너지가 가까이서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 참 좋다.
‘미드나잇’이란 제목처럼 한밤에 내린 어둠이 빛을 가리고 모든 이들의 눈과 귀를 막았어도 여전히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실낱같은 희망을 꿈꾼다. 해석하는 바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품이 전하고자 했던 궁극적 의미는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한 비극의 페이지가 아니라 마지막 커튼콜에 담겼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번 시즌만큼은 더욱 그렇다. 영원한 멈춤이란 없듯, 끝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던 밤도 결국 밀려났다. 희망이 절실한 시기에 이 작품을 만나보길 추천하는 이유다.
뷰티누리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