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 원종원의 커튼 콜 진귀한 공동수상 이면엔 특별한 사연이 있다_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이충욱 기자 | culee@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2-04-29 06:00 수정 2022-04-29 06:00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공연사진(신시컴퍼니 제공)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가 열렸다. 지난 한 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공연예술 분야를 얼어붙게 했지만, 이번 어워즈에서도 등장했던 것처럼 ‘쇼는 계속돼야 한다(Show must go on)’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어두운 환경 속에서도 문화와 예술이 어떤 방향성을 지니고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줄 수 있는지를 다시 곱씹어보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 

수상식은 늘 감동과 눈물이 교차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올해 가장 이목을 집중시켰던 순간은 단연 남자 신인상 수상부문이었다. 전례없는 공동수상이 이뤄졌는데, 바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세 주인공 꼬마들이었다. 제법 어른스럽게 “함께 공연하는 모든 사람들, 선생님들께 영광을 돌린다”는 수상소감을 내 객석으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번 3기 빌리들의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 공연장을 찾아달라는 부분에서는 웃음도 터져 나왔다. 아이들의 모습을 만나는 것은 언제든 반갑고 행복한 순간들이지만, 대한민국의 빌리들은 그 중에서도 더 특별한 존재들이 아닐까 싶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처음 막을 올린 곳은 2005년 5월 11일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팔레스 극장에서였다. 물론 개막초기부터 화제를 몰고 다니는 대박 흥행을 이어갔고, 대부분의 예상처럼 세계 각지에서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무대용 뮤지컬에서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스티븐 달드리가 연출을 맡았고, 안무 역시 스크린에 참여했던 피터 달링이 동참했다.

영화를 제작했던 워킹 타이틀이 뮤지컬 제작에서도 주관사로 참여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원작 영화의 제작진이 고스란히 무대에 관여함으로써 작품의 일관된 이미지를 이어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탄광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는 사실 대본을 쓴 극작가 리 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모티브를 차용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 역시 영화의 제작진이 무대로 고스란히 이어짐으로써 더욱 효과적으로 구현해내게 되는 바탕이 됐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사회적 리얼리즘이 가미된 성장영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사회적 리얼리즘이란 코믹한 설정이나 재미있는 이야기 안에 실제 우리가 살고 있거나 살았던 현실의 진짜 고민들을 담아 풍자해내는 일련의 문화예술적 성향을 말한다. 배꼽 잡는 드라마와 코믹한 상황 전개에도 불구하고 해당 문화콘텐츠를 감상한 후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이 알싸한 뒷맛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부류의 작품들이 지니는 특별한 묘미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도 마찬가지다. 상업 무대의 콘텐츠로서는 드물게 사회적 리얼리즘을 반영한 이 뮤지컬은 무노동 무임금을 주창하며 영국병을 치유했다는 영국 마가렛 대처 수상과 보수당 정권의 또 다른 단면을 시골 탄부의 가정에 맞춰 그럴싸하게 풍자해낸다.

왕립 발레 스쿨로부터 합격통보를 받은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워 한 걸음에 달려간 노조 사무실에서 사측의 일방적인 승리로 종결된 탄부들의 마지막 파업이 절묘하게 교차된다든지, 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파업 현장을 떠나 굳은 표정으로 탄광으로 향하는 아버지가 시위대의 항의를 막기 위해 쇠창살이 붙어있는 ‘닭장차’를 타고 탄광으로 들어가는 모습 등은 관객들에게 무거운 정적을 드리울 만큼 깊이 있는 현실감을 전달한다. 무작정 화려하거나 환상적이지도 또 결코 달콤하지도 않지만, 콧등이 시큰해지는 묵직한 감동을 느끼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 만날 수 있었던 씁쓰름한 사회풍자와도 엇비슷한 무대적 체험들이다. 

영화와 무대의 공통점도 있다. 단연 손꼽을 만한 것은 역시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다. 무대를 통해 만나는 아역 배우들의 춤과 연기는 가족 뮤지컬이라는 마케팅적 요소로서의 장점도 되지만, 무엇보다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감탄하고 미소짓게 되는 마술 같은 효과를 잉태해낸다. 피아노에서 몸을 비틀어 반회전 점핑을 하고, 발레의 기본 동작에 맞춰 터닝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무대라서 더욱 현실감도 느껴지고, 생동감도 넘쳐나는 최고의 순간들이다. 여기에 죽은 엄마와 발레 선생이 함께 등장해 노래하는 ‘편지’ 장면이나 미래의 자신과 만나 함께 이중무를 꾸미는 시퀀스 등은 뮤지컬이라서 느낄 수 있는 감성적 체험을 더욱 극명하게 객석으로 전달해준다. 

사실 뮤지컬의 주인공인 빌리 역은 오디션 때부터 이미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부 영화팬들은 영화에 나왔던 배우 제이미 벨이 무대에 서기를 간절히 기대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영화가 제작된 2000년 당시 그는 11살이었지만, 뮤지컬이 만들어진 2007년에는 이미 청년으로 자라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빌리 역은 영국 전역에서 펼쳐진 오디션을 통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세 소년 - 제임스 로마스와 조지 맥과이어 그리고 리암 모우어에게 돌아갔다.

체력적인 문제로 성인 배우처럼 매일 무대에 설 수 없어 세 소년이 번갈아 무대를 꾸몄는데, 이제 겨우 열 살을 넘긴 어린 나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역동감 넘치는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묘사해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결국 세 소년은 이 작품에서의 연기로 영국 무대 최고의 권위인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물론 이 기록은 역대 최연소 수상 기록이자 무대로서는 희귀한 공동수상 기록이었다. 흥미롭게도 토니상에서도 이 기록은 똑같이 재연됐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섰던 세 아역배우 - 데이비드 알바레즈와 키릴 쿨리쉬 그리고 트렌트 코왈릭이 남우주연상을 공동수상하게 된 것이다. 결국 희귀한 공동수상의 기록은 대서양을 건너 뮤지컬의 양대 산맥에서 똑같이 재연되는 진귀한 광경을 연출해 냈다. 물론 전술한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제 한 줄을 더 보탠 흥미로운 사례가 됐다.

영국의 국민가수인 엘튼 존이 작곡한 뮤지컬 음악들은 특유의 수려한 선율들로 잘 포장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한 그는 최근 뮤지컬 공연가에서 맹활약중이다. ‘라이언 킹’의 음악도 그가 아프리카 뮤지션들과 함께 만든 선율들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도 수준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선보이는데, 특히 주제가격인 ‘전기’와 죽은 빌리의 엄마와 발레 선생이 함께 노래하는 ‘편지’는 공연을 본 후 음악만 들어도 울컥해지는 감수성을 담아내 이 뮤지컬의 최고의 명장면으로 통한다. 종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두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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