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벗어날 수 없는 매력, 뮤지컬 ‘레베카’
이충욱 기자 | culee@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2-02-11 06:00 수정 2022-02-11 11:10

레베카 공연사진_맨덜리 저택 서재(EMK 제공)

지나간 추억의 그림자에 사로잡혀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처럼 불필요한 감정이 또 있을까 싶지만, 눈앞에 놓인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 이들에게 당장 이런 말이 와닿을 리 없다.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대상과 나를 견주어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마치 무게추가 한쪽으로 기울 듯 좀처럼 반전시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 불리한 사람이 누군지는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뮤지컬 <레베카> 속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남편의 전 부인이자 모든 이들이 사랑했던 여인 ‘레베카’가 드리운 그림자는 생각보다 크고 짙었다. 작품은 그런 ‘나’의 환상이 그린 프롤로그로부터 출발해 그가 ‘레베카’란 망령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며 공감과 흥미를 유발한다.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의 결정체, 뮤지컬 <레베카>가 여섯 번째 여정을 시작했다. 이번 시즌 김준현, 에녹, 이장우가 새로운 ‘막심 드 윈터’ 역으로 합류해 눈길을 끌었고, ‘레베카’의 뜨거운 인기를 견인하는 핵심 인물 ‘댄버스 부인’ 역에 신영숙과 옥주현이 더블 캐스팅되면서 대체 불가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민영기, 임혜영, 박지연, 이지혜, 최민철, 이창용 등이 함께한다. 공연은 지난 11월 16일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해 내년 2월 27일까지 이어진다. 

뮤지컬 <레베카>는 영국 출신 대중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가 쓴 1938년 작 원작 소설과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40년 작 동명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언뜻 보면 평범한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론 놀라운 서스펜스 기법과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극찬받아 온 베스트셀러다. 미스터리 고전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레베카>는 뮤지컬 외에도 영화와 연극,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로 재생산된 바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제작된 작품은 2020년 10월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다. 화려한 색감과 환상적인 배경, 세련된 연출로 돌아온 현대판 <레베카>는 히치콕 감독이 남긴 불후의 명작과 비교되며 주목받았지만, 공개 당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주연배우의 사생활 문제와 맞물리면서 기대만큼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뮤지컬이나 전작 영화보다 긴장감이 덜한 이유도 한몫했다. 

200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첫선을 보인 뮤지컬은 로버트 요한슨 연출, 극본가 겸 작사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한국에서는 2013년에 초연됐는데, 시즌을 거듭하는 동안 총 83만 관객의 찬사를 받으며 한국인이 사랑하는 대표 뮤지컬로 이미지를 굳혔다. 전개 자체도 흥미롭지만 ‘행복을 병 속에 담는 법’, ‘영원한 생명’, ‘하루 또 하루’, ‘레베카’ 등 강렬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많아 더욱 사랑받는 뮤지컬이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한 몬테카를로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나’와 ‘막심 드 윈터’는 ‘나’의 고용주였던 ‘반 호퍼 부인’의 눈을 피해 사랑을 키워 간다. 어린 나이에 가진 것 없이 혼자였던 ‘나’에게 신사답고 부유한 어른 남자 ‘막심’은 매일 함께하고 싶은 행복이었다. 결국 둘은 결혼을 하게 되는데, 불의의 사고로 아내 ‘레베카’를 잃은 뒤 방황을 거듭한 ‘막심’이 상대적으로 지극히 평범한 여자와 재혼해 맨덜리 저택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호사가들로부터 화제가 됐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저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지만, 유령처럼 어른대는 ‘레베카’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큰 키에 화려한 외모, 매력적인 성격을 지녔다던 ‘레베카’는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고, 그런 새 안주인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집사 댄버스 부인까지 압박해오면서 ‘나’의 존재는 갈수록 더 흐려진다. 결국 막심과도 오해가 쌓여 결혼생활에 위기가 찾아오고 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을 반전시킬 단서가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이른다.

여전히 모든 것이 ‘레베카’로 물든 저택에서 ‘나’ 캐릭터가 보여준 심리묘사는 매우 정교하면서도 흥미롭다. ‘나’는 심지어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했을 만큼 어디에서도 영향력이 없는 듯 보이지만, 원작과 달리 훨씬 주체적이고 강단 있는 성격을 지닌 인물로 등장해 더욱 재미있다. 특히 초연 이후 7년 만에 ‘나’로 무대에 선 임혜영은 여리고 사랑스러우면서도 힘 있는 모습으로 무대를 누비며 반가운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빠른 장면 전환과 화려한 무대 구성 역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주된 요소다. 그중에서도 ‘댄버스 부인’의 위력이 느껴지는 회전 발코니 장면은 뮤지컬 <레베카>의 백미다. 바닷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발코니에서 ‘나’에게 죽음을 종용하는 듯한 ‘댄버스 부인’의 모습은 작품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각인되기도 한다. 배우의 남다른 해석과 오랜 경험이 쌓여 완성된 캐릭터가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데, 특히 옥주현의 ‘댄버스 부인’은 과거 ‘레베카’와의 관계를 유추하는 동안 묘한 긴장감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마치 ‘레베카’를 같은 여성으로서 바라본 이상적 여성상의 전형을 바라보듯 표현하다가도 진심으로 사랑했던 대상처럼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연기를 눈여겨보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줄다리기 끝에 결국 승기를 거머쥔 ‘미세스 드 윈터’는 과연 누구였을까. 치밀하면서도 스릴 넘치는 서스펜스와 흥미로운 심리전이 궁금하다면 올 연말 맨덜리 저택의 문을 두드려 보자. <레베카>의 황홀한 그림자가 당신을 단번에 압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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