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 원종원의 커튼 콜 동유럽 뮤지컬의 진수를 맛보다 ‘뮤지컬 레베카’
이충욱 기자 | culee@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2-01-07 06:00 수정 2022-01-24 08:45

뮤지컬 레베카의 공연사진(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최근 국내 무대에서 오스트리아 뮤지컬들의 인기몰이가 대단하다. 오랜 세월, 음악과 이야기를 더해 대중적 인기를 누려온 독일어권 공연시장, 특히 독일어 오페라의 전통이 현대의 뮤지컬 산업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양상이다. 오스트라아의 수도인 비엔나에 가면 라이문드 극장이나 베토벤의 여러 교향곡들이 초연됐다는 유서 깊은 씨어터 안 데어 빈 등에서 뮤지컬을 만날 수 있다.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오페라의 유령’의 독일어 버전인 ‘다스 판톰 데어 오퍼(Das Phantom der Oper)’나 ‘거미 여인의 키스’의 독일어 제목인 ‘쿠스 데어 쉬피넨프라우(Kuss der Spinenfrau)’등 영미권 뮤지컬들의 독일어 번안작들이 주를 이루었었는데, 이제는 독자적인 오스트리아산 창작 뮤지컬도 흥행시키며 각광받는 문화산업으로까지 보일 성장하고 있다. 우리 뮤지컬 산업과 견주어보아도 매력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흥미롭다.

국내에 소개된 오스트리아산 흥행 뮤지컬들로는 ‘모차르트’와 ‘엘리자벳’, ‘황태자 루돌프’ 등이 있다. 대부분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을 지배했던 시기나 시민혁명의 근대 변혁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탓에 화려한 궁중의 무도회와 드레스를 차려 입은 귀족들, 혹은 새로운 사상과 신념에 변화를 꿈꾸는 영웅들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각에서는 ‘코스튬 플레이’ 혹은 ‘코스튬 뮤지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화려한 복식의 볼거리 많은 무대라 해서 붙여진 표현이다. 흥미롭게도 이 부류의 작품들은 일본에서 먼저 인기를 누리고 우리나라로 유입된 경향도 있는데, 아마도 ‘아시아의 유럽’이고 싶어하는 일본 대중들의 관심이 반영된 탓이라 추측된다.

합스부르크의 황녀로 태어나 14살의 나이에 프랑스 부르봉 왕가로 시집갔던 비운의 황녀 ‘마리 앙투와네트’는 그런 일본인들의 관심이 반영됐던 일본산 유럽배경의 뮤지컬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타카라즈카로 유명한 ‘베르사이유의 장미’도 엇비슷한 성격의 문화적 산물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스트리아산 뮤지컬의 전부는 물론 아니다. 다양하고 폭넓은 실험과 도전은 비엔나산 창작뮤지컬들에서도 얼마든지 만나볼 수 있는 재미난 풍경이다. ‘사극’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다. 가장 흥미로운 변주의 사례가 바로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미스터리 뮤지컬 ‘레베카’다.

원작은 영국의 여류작가인 데프니 듀 모리에가 1938년에 발표했던 미스터리 소설이다. 그녀 스스로가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특히 그녀의 대표작인 ‘레베카’는 280만부 이상이 팔려나갔을 정도로 영국에서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 이 이야기가 글로벌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서스펜스 스릴러의 대가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1940년 제작했던 동명 타이틀 영화 덕분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로 치면 ‘땅끝 마을’쯤 되는 영국의 남서쪽 지방인 콘월을 배경으로, 상상 속 전원저택인 멘덜리에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안주인 레베카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하나씩 밝혀내는 흥미진진한 내용이 펼쳐진다.

히치콕의 영화는 흑백버전이라 언뜻 생각해보면 컬러 동영상에 익숙한 요즘 대중들에겐 색 바랜 이미지를 연상케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영화를 시작하면 눈길을 떼기 힘들 만큼 흥미진진한 매력을 담고 있다. 히치콕 감독은 이 작품으로 첫 오스카상의 영광을 안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소설이 원작인 뮤지컬은 노블컬이라 부르고, 영화가 원작이면 무비컬이라 부른다. 뮤지컬 ‘레베카’는 소설과 영화를 모두 적절히 반영한 노블컬과 무비컬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초연은 빈의 라이문드 극장으로 3년여의 장기 흥행됐다.

초연의 인기는 독일어권 시장으로의 확대로 이어졌고, 핀란드나 일본, 우리나라 등지로까지 번안무대가 꾸며지는 글로벌 흥행을 이뤄냈다. 원작과 작사를 맡은 미하엘 쿤체가 처음 소설을 접한 것은 그가 10대시절이었다. 미스터리한 이야기 전개는 단번에 그를 매료시켰고, 훗날 다시 소설을 접하며 뮤지컬화의 꿈꾸게 됐다. 하지만 무대화는 순탄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작가로부터 다양한 파생상품 제안을 받았던 모리에의 아들이 판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그가 미하일 쿤체의 흥행 뮤지컬인 ‘엘리자벳’을 처음 보게 됐고, 이에 매료돼 결국 뮤지컬화의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대본 작업만 거의 2년을, 다시 실베스터 르베이의 음악 작업이 2년여동안이나 전개되는 오랜 정성 끝에 뮤지컬 ‘레베카’는 세상에 등장했다. 처음엔 영국에서 독회를 여는 등 영미권 시장을 겨냥했지만, 창작진의 본 무대인 독일어권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방향이 수정됐다. 프란체스카 자벨로가 연출한 초연은 버라이어티로부터 ‘꿈같은 무대’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흑백 스크린으로 구현됐던 히치콕 특유의 알싸한 뒷맛을 남기는 등장인물들과 소설속의 고즈넉한 저택은 우리나라 무대로 진출되며 형형색색의 무대 장치와 감탄을 자아내는 영상 효과로 대체됐다. 오스트리아나 일본에서의 무대를 경험했던 관객이라면 국내로 옮겨오며 이 작품이 얼마나 효과적인 비주얼적 완성도를 가미했는지도 여실히 실감할 수 있다. 원작자인 미하일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가 한국 무대가 세계 최고하며 큰 만족을 전했다는 소문도 그래서 충분히 미루어 짐작하고 또 이해할 만하다.

특히 영국 콘월지방을 알고 무대를 보면 이 뮤지컬이 만들어내는 비주얼적인 향취를 더욱 만끽할 수 있다. 웨일즈 남단의 콘월 지방은 우리의 강원도처럼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청정지역이다. 아더왕 전설의 배경이 됐던 장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별장이나 저택 등 옛 귀족들의 주거지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극의 공간적 배경인 맨덜리 저택 역시 엇비슷한 장소다. 특히 우리말 무대에서는 영상이 이런 공간적 배경을 잘 살려주는 효과적인 매개체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절벽 아래의 바닷가 풍경이나 검푸른 어둠속으로 비가 내리는 영국 시골의 정취, 매서운 바닷바람이 들이치는 발코니나 잠깐씩 비추는 햇살 속에서도 빠르게 흐르는 구름 등은 영국 전원 마을 특유의 정취를 완성도 높게 시각화해낸다. 원래 독일어나 일본의 번안 무대에서는 없었던 우리만의 표현기법과 연출이라 더욱 감탄을 자아내는 이 뮤지컬의 숨겨진 감상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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