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 원종원의 커튼 콜 미래를 배경으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다_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방석현 기자 | sj@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1-12-03 16:43 수정 2022-01-22 21:02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공연사진(파크컴퍼니제공)


막이 오르면 무대는 미래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우주 비행사를 꿈꾸는 제이와 그녀를 사랑하는 은기가 있다. 제이에겐 오랫동안 꿈꿔왔던 목표가 있다. 우주인으로 1년간 지구 밖에서 머무는 것이다. 어느 날 그 꿈이 현실이 됐다. 제이는 들뜬 목소리로 이 사실을 은기에게 말하지만, 은기는 충격에 휩싸인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 상의도 없이 1년이나 우주로 떠나겠다는 일방적인 통보가 씁쓸했기 때문이다. 결국 말다툼이 벌어지고, 은기를 화가나 집을 나서다 사고를 당한다.


은기가 화들짝 잠에서 깨어난다. 오늘도 사고에 대한 기억이 그를 진땀나게 만든 것이다. 우주 비행도 포기한 제이는 은기를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해 그를 돌본다. 제이의 노력으로 거의 회복한 은기는 더할 나위 없이 그녀를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초인종이 울린다. 제이를 수거하러 왔다는 날벼락 같은 목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가방을 들고 들어서는 제이. “나 다녀왔어, 그녀는 내가 당신을 위해 남겨둔 복제인간이야”. 은기가 사랑했던 것은 제이일까, 제이의 분신이었던 복제인간일까.


뮤지컬의 원작은 만화다. 누적 조회수 1억 뷰를 돌파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작가 캐롯의 연재 웹툰을 가져다 다시 무대용 뮤지컬로 각색한 공연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원작 웹툰 ‘이토록 보통의’는 여러 사연과 인물, 이야기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딕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뮤지컬에서 활용한 이야기는 그 중 두 번째 단편인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를 모티브로 활용하고 있다.


사실 요즘 문화산업에서 웹툰을 활용한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는 다양한 인기 콘텐츠의 출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인 흥행 사례로는 영화와의 만남이 있다. ‘신과 함께’다. 주호민 작가의 원작 웹툰은 기발한 발상과 흥미로운 이야기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었는데, 영화로 탈바꿈되며 ‘죄와 벌’, ‘인과 연’ 시리즈로 제작되었고, 두 편 모두 천만 관객을 넘는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모으는 기념비적 성과를 남겼다. 무대로의 변환도 이뤄져 뮤지컬 ‘신과 함께’가 만들어져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웹툰 ‘무한동력’도 비슷하다. 역시 주호민 작가의 원작을 무대용 콘텐츠로 변환시킨 경우로 수려한 선율을 잘 담아내는 뮤지컬 작곡가인 이지혜가 각색에 주요한 역할을 맡아 신선한 화제를 불러모았다. 웹툰과 안방극장의 교류는 한류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며 승승장구할 정도다 ‘미생’, ‘이태원 클라스’, ‘유미의 세포들’, ‘김비서가 왜그럴까’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벅찰 정도로 많은 흥행사례들이 있다.


대부분 웹툰 원작의 흥행 콘텐츠들이 화려함이나 다양함, 이야기의 변주를 통한 익숙하면서도 다시 새로운 감각적 변용에 치중했던 데 비해,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는 여타 작품들과는 차별되는 또 다른 매력을 담아낸다. 비교적 수수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소극장 뮤지컬로의 전환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웹툰 속 이야기를 무대로 고스란히 재연하는데 머물기보다는 한층 부드럽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려주는’ 느낌을 극대화하고 있어 이색적이다. 덕분에 웹툰을 미리 알고 있는 관객이라도 무대의 이야기에 다시 귀를 기울이게 되는 절묘한 매력을 담아내게 됐다.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 모니터에서 무대로 바뀌어 구현되며 세세한 부분에서 다소의 변화도 시도됐다. 남자 주인공 은기의 직업이 웹툰에서는 로봇 대여점 주인으로 나오는데 반해 무대에서는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은, 로봇을 수리할 줄 아는 로봇과 관계된 직업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웹툰에서는 차량과 연관된 교통사고로 그려졌던 은기의 사고도 무대에서는 물에 빠지는 듯한 영상으로 대체됐다. 덕분에 뮤지컬에서는 원작보다 몽환적이면서 또 판타지같은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웹툰에서는 P로 나왔던 여인의 이름도 무대에서는 J로 바뀌어진 것도 뮤지컬만의 변화된 부분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세트다. 웹툰에서의 공간이 현실적인 장소의 이동으로 그려지고 있다면, 무대는 상당히 상징적이고 미니멀리즘적인 공간과 영상을 다양하게 접목시키고 활용하는 세련됨을 보여준다. 뮤지컬의 변화는 웹툰에서보다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자 매력으로도 작용된다. 효과적인 압축과 생략의 과정이 이뤄졌다고 평가할 만하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배우는 남자 배우와 여배우 각 한 명씩이다. 다만, 요즘 우리나라 뮤지컬들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멀티 캐릭터의 활용이 이 작품에도 간간히 등장해 관객들의 보는 재미를 극대화한다. 특히, 복제인간 로봇이었던 제이는 다리가 고장나 절고 있고, 실제의 제이는 그렇지 않다는 설정은 다소 복잡할 수 있는 극 전개를 따라가는데 효과적인 힌트를 제공해준다.


2021년 앙코르 무대에서 제이역으로는 ‘스페셜 레터’,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청순한 연기로 인기를 누렸던 최연우가 ‘어쩌면 해피엔딩’, ‘블랙 매리포핀스’ 등에서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였던 강혜인과 이지수와 함께 무대를 꾸민다. 꽤나 적절히 어울리는 배역이라고 느껴질 만큼 배우들의 역량이 잘 묻어난다. 은기(웹툰에서의 이름은 홍은기다) 역으로는 ‘여신님이 보고계셔’에서 사랑받았던 손유동과 정휘, 신재범이 등장한다. 특히 최연우와 정휘는 오리지널 캐스트로 참여한 바 있어 앙코르 무대에서 만나는 농익은 캐릭터 묘사가 더 반갑다.


원작자인 캐럿은 뮤지컬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편지로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다가 육성으로 직접 들은 기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편지가 좀 더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아낼 수 있겠지만, 말과 소리로 직접 듣게 되면 아무래도 좀 더 생생한 숨소리에 얹혀 전달되게 마련이다. 공연을 보면 더욱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복제 인간 이야기는 영화 ‘아일랜드’를 통해서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바 있다.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는 ‘아일랜드’와는 조금 결이 다른 우리식 이야기,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아 미래를 보여준다. 극적 반전이 이뤄지는 엔딩은 꽤나 충격적이다. 이 곳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모두 밝힐 수는 없지만, 아마 공연장을 찾는다면 그 충격적인 전개에 다소 놀랄 수도 있을 것 같다. 샤갈의 박물관, 니스의 해변가, 밤하늘의 별자리 등은 마치 순정만화의 한 장면처럼 관객들의 상상을 자극한다. 수많은 박스들로 이뤄진 무대의 풍경은 마치 기억을 담아놓는 머릿속 어딘가의 상자들같다. 재미있는 한국산 창작 뮤지컬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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