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이슈가 낳은 문화호황, 이건희 컬렉션과 리움 재개관
방석현 기자 | sj@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1-11-26 16:35 수정 2021-12-15 16:40

“기증Donation의 어제와 오늘,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첫걸음”

국력은 칼이 아닌 문화에서 나온다는 ‘문화정치’는 르네상스시대 메디치가의 문화후원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후 선진국의 뮤지엄들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 경제인들의 이름을 가진 기증관(혹은 기증실)을 통해 국가정체성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꿈꾸는 이상을 확상시켰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올해 초부터 불어 닥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통 큰 기부로, 기증문화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고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이어진 삼성가의 미술애호는 국보급 문화재와 최고가의 근현대 미술품 소장으로 이어져, ‘이건희 컬렉션’ 기증에 고미술 만1천여 점과 근현대미술 2만3천여 점이 각각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중박)과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 등에 지난 4월 기증되었다. 이건희컬렉션이 해시태그가 되어 국중박과 국현의 기획전시 예약이 몇 초 만에 마감되는 ‘기증전시 붐업’ 현상이 일어나면서, 실제 미술시장을 달구는 젊은 MZ세대들의 ‘아트테크’로까지 이어진 것 역시 고무적이고 할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 유치경쟁을 뒤로하고 결국 ‘종로구 송현동’으로

얼마 전까지 각 지역 지자체들의 입구에는 ‘한국의 문화예술 랜드마크’를 꿈꾸며 “이건희 컬렉션의 ●●●지역 유치를 환영합니다.”라는 플랜카드가 너도나도 걸려있었다. 문화의 지역확산 운동으로까지 이어지며, 이건희라는 브랜드는 ‘기증문화의 아이콘’에서 ‘지역정치경쟁’의 문화자본(cultural capital, 文化資本)으로까지 환산된 것이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같은 국보와 보물, 국민화가라 불리는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박수근의 ‘빨래터’·이중섭의 ‘흰 소’ 등의 대표작들, 모네·샤갈·피카소 등의 국내외 거장들의 작품이 국중박과 국현, 그리고 지방 박물관 등에 기증되면서, 문화예술계는 한국의 ‘기증 르네상스’가 시작됐다며 쾌재를 불렀다. 이에 화답하듯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봄 “별도 기증실이나 특별관 설치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고, 정부 역시 2만3천여 점의 기증품을 통합적으로 연구·관리·전시할 기증관 부지 검토에 들어갔다. 이에 미술계에서는 근대 미술품을 중심으로 한 ‘이건희 미술관(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이를 유치하려는 지방자치단체들의 과열 경쟁은 지역 간 문화불균형 해소문제와 더불어 새로운 문화정치의 현장을 목도케 하였다.

정부의 발표는 지난 6월말쯤 정해지는 듯싶었으나, 유치경쟁 속에서 종착지는 지난 11월 9일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로 확정되었다. 이제 국면은 이를 어떻게 운영하고 활성화 하는가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문화재·미술품 2만3천 여 점이 송현동 부지에 정착한다는 소식에 환희와 탄식(기대·우려)이 오가는 가운데, 각 장르와 시대별 흐름과 맞지 않는 문화재들이 제대로 안착할 수 있도록 앞으로라도 연구 인력을 투입해 내실 있게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건희 효과’로 불티나는 예약시스템, 이슈를 넘어 기증문화 정착으로

이번 기증을 두고 순수한 기업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형태의 사회환원이냐, 상속세 납부기한을 두고 벌인 이벤트냐 등에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지만, 결과적으로 기업의 사회공헌 계획에 따른 문화기부의 측면은 무시할 수 없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명작들이 ‘이건희 컬렉션’이라는 이름 속에서 새로운 기관의 출연을 목도하게 됐다는 것은 일제강점기로 이분화된 한국미술의 여러 갈래들을 풀어낼 ‘근대미술’연구와도 연계되기 때문이다. 이건희의 기증이 한국 대표 뮤지엄으로 정착할 때까진 운영과 활성화에 있어 다양한 공론장을 거쳐야 하지만,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자리인 송현동 부지가 얼마 전 개관한 서울공예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삼청동 화랑거리 등과 더불어 하나의 ‘서울문화 예술존’으로 연결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이건희컬렉션의 공개이후, 많은 대중들이 이에 열광했고 국현과 국중박의 예매 사이트는 말 그대로 ‘클릭전쟁’을 벌일 만큼 빅 이슈가 되었다. 성황리에 전시를 끝낸 용산 국중박 전시인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2021.07.21.~2022.3.13.)’에 비해 짧은 전시기간 탓에 예매번호의 뒷거래 이야기 까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고미술과 근현대, 한국과 서양미술을 망라하는 대표작들을 어떻게 연결해서 연구, 전시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시각도 자리한다. 해외에도 시대와 장르를 가로지른 통합형 미술관이 자리하지만, 이는 규모와 인력,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이다. 이건희 기증관은 제대로 된 운영과 시스템을 갖추어 이후 기증문화의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기증관의 독립적 운영이냐, 타 기관과의 협업(혹은 산하운영)이냐의 문제도 고려할 사항이다. 정부는 2027년 개관목표를 세웠지만, 이 역시 서두를 부분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송현동 부지로 옮긴 것에 대한 지자체의 반발 역시 어떻게 다독이고 가야할 것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문화불균형 문제를 지역의 다른 기증들과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기증문화 확산’을 위한 대책마련은 무엇인지 등이 논의돼야 할 때다.

 

기증문화의 장을 연, 메디치의 우피치컬렉션

삼성가의 미술품 컬렉션이 국내 미술문화 확산에 큰 기여를 한 만큼, 이에 대한 서구의 선구적 사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기증문화는 작품에 대한 사회적 공유의 확산 뿐 아니라, 한 국가의 에술연구의 수준과 지평을 보다 깊고 넓게 확산하기 때문이다. 기증문화하면 떠오르는 집안은 바로 메디치(Medici) 가문이다. 후손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그들의 정신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남아 세계 관광객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15세기 피렌체의 금융업을 쥐고 흔들었던 이 가문은 1569년 코지모 메디치가 토스카나 대공으로 선임되면서 피렌체 주변의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중심의 지배자로 자리매김한다. 우피치미술관의 건축물은 원래 토스카나 대공국의 정부청사로 16세기 후반 건립된 것으로, 일부를 미술관으로 사용하다가 메디치가의 컬렉션은 확대되면서 오늘의 전설 같은 컬렉션이 남게 된 것이다. 메디치의 마지막 소장자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 1737년 후사가 없던 토스카나 대공국의 마지막 군주 가스토네 데 메디치가 사망하면서 남성 직계가 끊어졌고, 이를 가스토네의 누나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가 지켜냈다. 빌헬름 2세와 결혼했던 안나는 자식이 없던 탓에, 동생이 죽자 우피치 미술관을 비롯한 메디치 가문이 남긴 유산을 프란츠 1세와 협상하여 국가에 귀속시켰고, 그 컬렉션이 현재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의 소장품들이다. 이렇듯 명문가란 사람이 사라지더라도 기증문화를 통해 정신과 가치를 남기는 것이 아닐까.

 

삼성가 호암미술관·리움으로 이어지는 발걸음


리움 재개관에 다녀온 방탄소년단 멤버 뷔(사진-뷔 인스타그램 캡쳐)

 

이건희 효과의 호황 속에서 한동안 빗장을 걸어 잠궜던 고미술 중심의 호암미술관과 한남동 리움 미술관이 재개관하면서 동·서양의 명작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 예약시스템 역시 오픈되자마자 몇 분 안에 마감돼 버리는 일이 발생 중이다. 그 많은 작품들을 기증하고도 최고 수준의 컬렉션들은 동서양의 명작들을 대거 쏟아내며 많은 이들의 발길을 잡는다. 반 이상이 국내 처음 선보이는 신작 컬렉션이다. 고미술 쪽 컬렉션도 마찬가지, 고려 유물인 국보 ‘금동대탑’과 고려 말 제작된 유일한 팔각합, 김홍도의 ‘군선도’ 등 국보 보물 10여점이 새롭게 빗장을 열었다. 40주년을 앞둔 호암미술관도 금속미술을 조명하는 신호탄을 알렸다. 국내 유일의 가야금관과 청동검 등 금속을 주제로 한 현대작품 45점을 전시한 것이다. 1년 7개월 만에 문을 연 삼성가의 미술관들이지만, 기획전은 더 오랜만의 일이기에 찾는 이들마다 고무적이라고 말한다. 특히, 방탄소년단(BTS) 멤버 뷔와 제이홈이 리움을 찾은 사진을 공식 SNS에 공개해 많은 MZ세대들의 관심을 끌었다. 재개관한 뮤지엄들과 더불어 새롭게 연 뮤지엄숍 역시 핫플이 됐다.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아트상품들이 ‘나만의 작품’을 소장하려는 MZ세대의 발길을 잡아끌기 때문이다. 기증문화가 이끄는 문화자본의 대중화는 분명 여러 시행착오를 포함하겠지만, 새로운 세대들이 문화를 향한 관심을 견인한 것은 자명해 보인다.

 

<필자소개>

안현정 씨는 예술철학 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손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 박사박물관 학예관, 유증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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