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표절과 위조의 줄다리기 속에서 탄생한 명곡
방석현 기자 | sj@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1-10-15 13:57 수정 2021-10-25 14:00
표절(剽竊): 다른 사람의 저작물의 일부 또는 전체를 몰래 따다 쓰는 행위.
위조(僞造): 어떤 물건을 속일 목적으로 꾸며 진짜처럼 만듦.

 
표절과 위조의 정의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이 두 행위는 무척이나 부정적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논문 표절이나 위조 화폐와 같은 사건에서 우리는 이 행위들이 사회에 끼치는 큰 해악을 실감하지요. 음악이라는 장르에서도 두 행위는 역시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표절과 위조가 결국에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한 명곡이 있습니다. 바로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의 마지막 작품인 레퀴엠(Requiem, KV 626)입니다. 이 작품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가령, 죽은 자를 위한 미사를 뜻하는 레퀴엠을 작곡하는 과정에서 작곡가 자신이 사망했다는 사실이나 몸이 쇠약해지던 모차르트가 이 레퀴엠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 여겼다는 것, 그리고, 정체를 밝히기 꺼려했던 작품 의뢰자의 존재 등은 이 위대한 작품에 신비로운 아우라를 더해주지요.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에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 인물의 표절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 시도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이름이 알려진 이 인물은 발제크 백작(F. v. Walsegg, 1763-1827). 그는 21세가 채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의 기일에 연주될 레퀴엠을 모차르트에게 의뢰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보면, 보통의 의뢰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독점적으로 소유해 자신의 작품으로 지휘할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는 음악 애호가이던 그가 종종 행했던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비밀 유지가 중요했는데, 이를 위해 상당한 금액의 지불과 원본 악보를 비밀리에 베끼는 과정이 필수적이었지요. 1791년 7월, 그가 그의 존재를 밝히지 않은 채 모차르트에게 비밀스럽게 레퀴엠의 작곡을 의뢰했을 때에도, 작곡료의 절반을 미리 지불하였습니다. 또, 원본 이외의 악보를 만들지 않기를 원했다고 하지요.
 
모차르트는 발제크 백작의 의뢰를 받아들이지만, 당장은 두 개의 오페라, 즉 <마술피리>와 <황제 티토의 자비>의 작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10월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레퀴엠의 작업에 착수하였습니다. 하지만, 12월 5일에 너무도 때이른 죽음을 맞이하지요. 그에게서 레퀴엠 원본 악보를 받으려던 발제크 백작의 계획은 당연히 큰 차질을 빚게 됩니다.
 
사실, 모차르트의 죽음은 발제크 백작에게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모차르트가 이미 레퀴엠 작곡료의 절반을 받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니,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C. Mozart, 1762-1842)는 그 선금을 돌려주어야 했지만, 당시 모차르트 집안의 가계 상황은 좋지 못했고 콘스탄체는 어떻게든 레퀴엠의 작곡을 마무리짓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녀는 처음에 아이블러(J. Eybler, 1765-1846)에게 레퀴엠의 완성을 부탁하였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였고, 결국 그 작업은 쥐스마이어(F. X. Süssmayer, 1766-1803)에게 맡겨지지요. 쥐스마이어는 모차르트가 생애 마지막에 레퀴엠을 의논한 인물이었음에도 의외로 이 작품을 완성시킬 첫번째 인물로 선택되지 않았는데, 이는 모차르트가 생전에 아이블러를 더 높이 평가했고, 결정적으로 쥐스마이어가 모차르트와는 껄끄러운 사이였던 살리에리(A. Salieri, 1750-1825)의 편에 있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콘스탄체가 그런 쥐스마이어에게 부탁했다는 사실은 레퀴엠의 완성이 절박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지요. 결국,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3개월이 지난 1792년 2월, 쥐스마이어에 의해 레퀴엠은 완성됩니다.
 
모차르트가 완성한 척 발제크 백작에게 건네진 악보에는 모차르트가 모든 파트를 온전히 완성했던 레퀴엠의 첫 부분과 쥐스마이어가 완성한 작품의 다른 부분 등이 뒤섞인 채였습니다. 필적이 모차르트와 유사했던 쥐스마이어는 악보의 첫 페이지에 모차르트의 서명을 위조했는데, 시간을 1792년으로 적었습니다. 모차르트는 그 전해에 사망하였으므로, 이 서명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은 바로 알 수 있는데, 모차르트가 사망한 빈에서 5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살았던 발제크 백작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가 1793년 12월에 자신이 작곡가인 것처럼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지휘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지요. 이미 빈에서는 모차르트의 장례식에서 레퀴엠의 일부가, 그리고 1793년 1월에 전체 작품이 연주되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발제크 백작은 모차르트의 죽음을 몰랐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발제크 백작에게 전해진 레퀴엠 악보의 첫 페이지.
이 부분의 악보는 모차르트가 직접 기입하였지만, 오른쪽 상단에 쥐스마이어가 위조한 모차르트의 서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출처: Österreichische Nationalbibliothek)
 
 
발제크 백작의 바램과는 달리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그에게 건네진 악보 외에도 다른 악보가 존재하였고, 아마도 백작이 레퀴엠의 악보를 전적으로 소유해야 한다는 계약 내용까지는 알지 못했을 콘스탄체가 사본을 출판사에 보내는 등 백작의 계획은 모차르트의 죽음으로 인해 다 틀어지게 됩니다. 설사 악보가 그에게 건내진 것 하나만 존재했더라도,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갔으니, 그가 원했던 비밀은 어차피 지켜질 수 없었겠지요.
 
발제크 백작의 모차르트 레퀴엠에 대한 표절 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만일 그의 레퀴엠 제의가 없었더라면, 또, 그가 그의 비밀 계약을 위해 작곡료의 절반을 미리 지급하지 않았더라면, 이 위대한 작품은 탄생할 수 있었을까요? 비록 표절을 시도했지만, 레퀴엠의 작곡을 다른 이가 아닌 모차르트에게 의뢰했던 발제크의 선택은,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의 탁월한 선택 덕분에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통해 위로와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추천영상: 모차르트의 레퀴엠 작곡은 쥐스마이어가 마무리지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모차르트가 그의 레퀴엠을 직접 완성하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의문은 계속해서 존재하였지요. 그래서, 쥐스마이어의 판본을 보완 및 수정하거나, 더 나아가 그의 흔적을 될 수 있는 한 지워버리려는 시도도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쥐스마이어의 판본은 여전히 가장 널리 연주되는 판본이지요. 추천영상 역시 쥐스마이어의 판본을 사용하고 있는 영상으로,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이었던 1991년, 가디너가 지휘한 공연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iMQbLheLE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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