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이유있는 역주행
방석현 기자 | sj@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1-09-24 14:16 수정 2021-09-29 14:21

클래식 역주행의 아이콘, 고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픈 노래들의 교향곡'

공연중인 존 윌리엄스(우)와 안네 소피무터(출처-지니뮤직)

 

현재 브레이브걸스가 대세다.

그들의 히트곡인 '롤린'은 2017년에 공개되었지만 4년동안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한 유튜버의 댓글 모음 유튜브 영상으로 해체직전에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았다고 한다. 브레이브걸스의 진정성을 알아봐준 군인들의 지지와 더불어 유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을받은 이 영상이 대박이 터트린 것이다. 롤린은 현재 발매 4년만에 거의 모든 음원차트에서 1위를 석권하며 역주행의 아이콘으로 불리고 있다.

 

알고리즘이라는 개념이 무색했던 1992년, 클래식에서도 초연이후 15년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한 교항곡의 이례적인 역주행이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사건이있었다.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 폴란드 작곡가의 음반이 영국·미국 클래식 차트 1위를 석권했음은 물론 영국 팝차트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게다가 클래식 중에서도 듣기 어려운 현대음악으로 말이다. 이 믿기 힘든 기록을 세운 작품이 바로 작곡가 헨릭 고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픈 노래들의 교향곡'이다. 어떻게 이런 '대박'이 가능했을까.

 

1977년 프랑스 루아양 페스티벌에 처음 선보였던 이 곡에대한 반응은 악평 일색이었다. 초연당시 세계적인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가 이 작품을 듣고 했던 말. "Merde! (쓰레기)". 심지어 하이파이 스테레오포니라는 음악잡지는 " 작품이라 부를 수도없는 이 곡은 돌이킬 수 없이 잘못된 길을 택했다"라고 평했다.

 

사실 7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모더니즘을 대변하는 난해한 음악들이 현대음악의 주류였다. 하지만 작곡가 고레츠키가 야심차게 발표한 교향곡 3번은 당시에는 뜬금없는? 전통적 조성음악에 소프라노 독창이 가미된 단조로운 음악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교향곡은 3악장 내내 50분이 넘도록 일관된 느린 템포를 유지하면서 악구를 끊임없이 반복되는 구조를 지녔다.
 

흥미롭게도 그의 음악적 궤적을 되짚어보면 그가 보여준 교향곡 3번의 음악세계는 철저히 예상밖이다. 작곡가 고레츠키는 1933년생, 폴란드 출신이며 여느 현대음악 작곡가처럼 아방가르드적인 음렬주의(Serialism)의 선두에선 작곡가였던 것이다. 1900년대 중반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조성을 버린 무조음악을 지향했으며 당시 난해한 현대음악의 사조를 충실히 따르던 인물이었다. 예를 들어 1961년 파리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교향곡 1번을 들어보면 교향곡 3번과는 판이하게 다른 전형적인 현대음악으로써 12음기법을 사용했다.
 

놀랍게도 1977년 그가 내놓은 교향곡 3번에서 그는 과감하게 기존의 전위적인 음악사조를 버리고 '친숙함'을 택했던 것이다. (교향곡 2번에서 미세하게 그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교향곡 3번은 1978년 폴란드에서 처음 음반으로 발매되었는데 주목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소피마르소 주연의 프랑스 영화 <폴리스>에 등장하며 점차 관심을 끌었고 이 음악에 내제된 대중성을 인식시켰다. 이어 이 교향곡의 가능성을 발견한 레코드회사 에라토는 1986년 이례적으로 영화OST 음반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에는 영국 클래식 FM에 꾸준히 선곡되어 전파를타며 대중속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결국 이 작품은 1992년 데이비드 진먼의 지휘에 소프라노 돈 업쇼가 합세하였고 런던 신포니에타의 명연주에 힘입어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전례없던 전무후무한 역주행을 기록했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음반의 뜬금없는? 대히트에 의아해했는데 사실 이 음악속에 내제된 대중성은 벌써 그 조짐을 보였던 것이다.
 

형식파괴에 치중했던 당시 현대음악의 홍수 속에 외려 심플하고 친숙했던 그의 음악은 역설적으로 전위속에 '전위적인 음악'이었을까. 고레츠키는 혹평에 아랑곳하지않고 오히려 이 작품이 가장 '전위적인 음악'이라고 했다. 또한 훗날 인터뷰에서 흥행의 근거로 "사람들은 놓쳐버린 그 무엇을 이 음악속에서 발견했으며 자신은 본능적으로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했다. 작곡가가 듣는이의 입장을 잘 간파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방가르드 노선을 따랐던 그이기에 듣기 쉬운 작품을 내놓았을 경우 쏟아질 혹평은 예상했을 터. 하지만 그는 과감히 '전위'라는 욕심은 배제했다. 그리고 교향곡의 부제' 슬픔의 노래'가 말해주듯 전쟁을 겪은 작곡가 자신이 바라본 전쟁의 참상과 슬픔을 진솔하게 음악속에 담아내는데 집중했다.무엇보다 단순명료하게. 이 음반의 성공은 그 용기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초연당시 평론가들에게 박한 점수를 받았지만 장르를 뛰어넘어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작품이 던지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아무리 어렵다는 현대음악일지라도 듣는 이들을 헤아리고 마음을 두드린다면 대중은 열렬히 반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슬픈 노래들의 교향곡'이라는 부제가 붙은 교향곡 3번은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악장은 15세기 폴란드 수도원의 '성 십자가의 탄식'이라는 기도문, 2악장은 게슈타포 수용소에 내던져진 18세 소녀가 벽에 새겨놓은 기도문 그리고 마지막 3악장은 전쟁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노래로써 폴란드 민요가 모티브다. 잘 알려진 2악장을 추천한다. 기도문의 내용은 짧다. " 어머니, 울지 마세요. 하늘의 순결한 여왕님이 우리를 지켜주실꺼에요 ". 2악장은 천국을 예견하듯 밝은 장조로 시작을 알린다. 소프라노가 부르는 소녀의 기도는 엄숙함을 자아내며 담담하게 구원을 노래한다. 이 악장의 감상포인트는 침통함이 아닌 천상을 바라본 한 소녀의 초연함이다. 고레츠키는 구구절절한 절규와 두려움이 아닌 단 몇마디의 간결한 기도문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고 말한 바 있다.

 

*유튜브 링크: 고레츠키 교향곡 3번 2악장

https://www.youtube.com/watch?v=BVVlSGSVjjw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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