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 원종원의 커튼 콜 작정하고 웃기려 만든 기분 좋은 무대_무비컬 비틀쥬스
방석현 기자 | sj@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1-07-23 14:51 수정 2021-08-31 14:56

뮤지컬 비틀쥬스 공연사진(사진-CJ이엔엠)



대략 98억년 동안 인간들을 겁주며 살아오던 존재가 있다. 이름은 비틀쥬스(Beetlejuice). 우리말로 풀어서 말하자면 딱정벌레 쥬스쯤 된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홀로 외롭게 지낸지도 이미 수억년, 자신처럼 오도 가도 못하는 유령 친구가 절실하다는 결론을 얻는다. 어느 날 그의 눈에 이제 갓 죽은 부부 바바라와 아담이 포착된다. 그들이 저승으로 직행하지 못하도록 ‘막 세상을 떠난 망자들의 안내서’를 감추고, 그들이 살던 집의 지박령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운다. 한편, 이 시골 저택은 새로운 주인-엄마와 사별한 리디아, 그녀의 아빠 찰스 그리고 리디아를 돌보다가 아빠의 새로운 연인이 된 델리아-을 맞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보게 만들려면 살아있는 인간이 그의 이름 ‘비틀쥬스’를 세 번 불러줘야 한다. 그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언급해선 안 되고, 반드시 연이어 불러야 한다. 과연 비틀쥬스는 이 소동의 승자가 될까? 리디아는 죽은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또 아담과 바바라의 운명은 어찌 될까? 새롭게 막을 올린 뮤지컬 ‘비틀쥬스’의 줄거리다.

원작은 1988년 개봉됐던 괴짜감독 팀 버튼의 동명 타이틀 영화다. 원래 영화제목이 ‘비틀쥬스’였지만, 1989년 처음 우리나라에 비디오 테이프로 출시되었을 때는 ‘유령수업’이란 제목이 쓰였다. 사실 비틀쥬스라는 이름은 오리온자리의 알파성인 베텔게우스(Betelgeuse)를 스펠링대로 발음되는 대로 읽은 것이라는 후문도 있다. 뭔가 미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하면서도 기괴한 존재라는 설정인 셈이다.

영화는 1,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글로벌 박스 오피스에서 7,37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 그때까지만 해도 신인감독에 불과했던 팀 버튼을 일약 스타덤에 등극시켰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도 세간에 신드롬이 될 정도로 화제였는데, 연기파 배우로 유명한 델리아 역의 캐서린 오하라나 아빠 찰스 역의 제프리 존스, 순진한 유령 부부로 나왔던 알렉 볼드윈과 지나 데이비스, 저승 심판관 주노 역의 전설적인 여배우 실비아 시드니, 풍만한 몸매(?)로 여러 작품들에서 약감의 감초같은 조연 역할을 잘 소화해내던 오소 역의 글렌 쉐딕스까지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주인공으로 나왔던 비틀쥬스 역의 마이클 키튼이나 리디아 역의 위노나 라이더는 이 영화로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랐다도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뮤지컬 비틀쥬스 공연사진(사진-CJ이엔엠)



뮤지컬은 물론 영화가 원작인 무비컬이다. 워싱턴 내셔널 극장에서 트라이 아웃 공연을 거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캣츠’와 ‘맘마미아!’가 상연됐던 윈터 가든 극장에 2019년 4월 25일 첫 둥지를 틀었다. 장기 공연될 것으로 예측되던 이 작품은 그러나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브로드웨이의 모든 극장들이 문을 닫자 2020년 3월 10일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물론 팬데믹이 지나가면 다시 막을 올릴 것이 기대되는 흥행작 1순위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뮤지컬 ‘비틀쥬스’는 스캇 브라운과 앤서니 킹이 공동 집필했으며, 뮤지컬 ‘킹콩’으로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주목받은 호주 출신 싱어송라이터 에디 퍼펙트가 작사 및 작곡을 맡았다. 연출로는 ​뮤지컬 ‘물랑루즈’로 흥행파워를 입증한 알렉스 팀버스가 참여했으니 요즘 표현으로 ‘핫’하고 ‘힙’한 브로드웨이 황금 제작진의 작품이라 인정할 만하다. 여기에 ‘해밀턴’, ‘디어 에반 핸슨’ 등 매년 새로운 작품으로 토니상을 휩쓰는 데이비드 코린스가 무대 디자인을 만들었고, 뮤지컬 ‘라이온 킹’의 마스크와 인형들을 만들어낸 세계 최고의 퍼펫 디자이너 마이클 커리까지 가세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주인공 비틀쥬스로 나왔던 알렉스 브라이트만도 단연 이슈의 중심이었다. 그는 바로 직전 같은 극장에서 막을 올렸던 전작 무비컬 ‘스쿨 오브 록(School of Rock)’에서 록 음악에 미친 괴짜이자 가짜 선생 드위 핀 역으로 열연을 펼쳐 토니상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인기 배우다. 이 작품 ‘비틀쥬스’에서도 영화 못지않은 괴짜 주인공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재연해 절대적인 추앙과 팬들의 사랑을 집중시켰다.

이미 극장 환경이 익숙한데다 애드립도 많은 스탠딩 코미디같은 작품의 성격이 그의 재능과 맞물려 큰 상승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비틀쥬스’에서의 활약으로 토니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다시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수상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유령을 볼 수 있는 겁 없는 10대이자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리디아 역으론 소피아 앤 카루소가 등장했다. 2001년생인 그녀가 이 작품에 합류할 때 나이는 불과 18살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의 데뷔가 이미 2013년 12살의 나이때 이뤄졌다는 점이다. 다양한 작품에서 가히 천재소녀의 모습을 보여준 재원이라 부를 만하다.

뮤지컬은 영화를 재연했다기보다 영화와 효과적인 차별화를 통해 또 다른 재미와 볼거리를 추구하고 있다. 세세한 줄거리나 극 전개도 그래서 영화와는 사뭇 다른데, 덕분에 영화를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뮤지컬은 다시 신선하고, 뮤지컬을 본 사람이라면 영화를 꼭 다시 보고 싶어지는 재미를 담아내게 됐다.

2021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막을 올린 한국어 공연은 미국 이외의 국가나 문화권에서는 처음 시도된 글로벌 확장 버전이다. 원작 제작진의 배려로 한국적 유머도 대폭 가미되어 우리말의 재미도 물론 잘 담아냈다. 주인공 비틀쥬스로는 유준상과 정성화가 캐스팅됐다. 특히, 개그맨 출신인 정성화는 마치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처럼 찰떡궁합의 무대를 선보인다. 물론 연기파 배우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유준상 역시 꽤나 만족스런 무대를 만들어낸다. 유령 특훈을 받게 되는 겁 많고 소심한 신참 유령 아내 바바라 역으로는 김지우와 유리아가, 작고 귀엽지만 당차고 에너지 넘치는 리디아 역으로는 홍나현과 장민제가, 바바라의 남편인 아담 역으론 이율과 이창용이, 가정교사 겸 새엄마 역인 델리아 역으로는 신영숙과 전수미가 등장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건 앙상블이다. 쉬지 않고 다양한 유령들(?)로 변해가며 춤추고 노래한다. 치밀하고 꼼꼼한 안무와 동선은 근래 봤던 어떤 라이선스 뮤지컬보다도 높은 완성도를 선보인다. 비주얼적인 완성도, 화려한 세트, 자동화 장치와 기상천외한 소품은 이 작품의 명성을 고스란히 재연해낸다.

왜 뉴욕 타임즈가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재미있는 집(Fun house)”이라고 했는지, 또 롤링 스톤스가 “마치 끝내주는 놀이기구처럼 관객들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놀라게 하는 작품, 흥이 폭발하는 즐거운 시간!” 같은 표현을 썼는지 무대를 만나면 금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특히, 팬데믹의 혼란 속에서 웃을 준비 아니 작정을 하고 공연장을 찾은 이들의 열광적인 박수 소리는 왠지 찡한 감동마저 느끼게 만드는 묘한 재미를 선사한다. 올 여름 놓치면 제일 후회될 기분 좋은 뮤지컬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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