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한 번씩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몇 년 전, ‘라라랜드’(데미언 셔젤, 2016)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유로 많이 회자되었던 작품, ‘쉘부르의 우산’(자크 드미, 1964)이다. 고전의 힘이랄까. 처음 개봉한 지 반 세기가 훨씬 넘은 작품이지만 그 영상미와 음악은 관객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자크 드미 감독은 음악감독인 미셸 르그랑과 함께 이 영화를 모든 대사가 노래로 진행되는 ‘송 스루’ 방식으로 기획한다. 이는 오페라 공연의 감흥을 극장에서 느낄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배우를 비롯한 모든 제작진들에게 도전적인 시도였다. 1950년대 말, 프랑스의 항구도시 쉘부르에서 엄마를 도와 우산 가게를 하는 아가씨 ‘쥬느비에브’(까뜨리느 드뇌브)는 자동차 수리공 ‘기’(니노 카스텔누오보)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알제리 독립전쟁으로 기에게 소집영장이 날아오자 두 사람은 눈물의 이별을 하게 된다. 기의 아기를 가진 쥬느비에브는 날마다 전장으로부터 편지를 기다리지만 소식은 거의 오지 않고, 그 사이에 보석상 ‘까사르’(마크 미셸)가 고백을 해 온다. ‘쉘부르의 우산’은 프랑스인들에게 비극적이었던 현대사를 배경으로 당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낭만성을 탈피해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두 남녀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세월이 흘러 조우했을 때, 그들은 의외로 건조해 보인다.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룬 쥬느비에브와 기에게 현재의 행복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쉘부르의 우산’은, 조금은 쓸쓸한, 해피엔딩이다. ‘라라랜드’의 엔딩에도 이러한 감수성이 잘 묻어나 있다. 미셸 르그랑은 지휘자이자 재즈 피아니스트이며 프랑스 누벨바그의 중요한 작곡가로, 200여 편이 넘는 영화와 TV 드라마에 참여했다. ‘쉘부르의 우산’에서는 저 유명한 테마곡을 다양한 악기와 스타일로 변주해 삽입했다. 쥬느비에브와 기의 이별 장면에서 사용된 슬픔을 폭발시키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Je Ne Pourrai Jamais Vivre Sans Toi(I’ll wait for you)‘는 멜로드라마 OST의 정석과도 같다. ‘쉘부르의 우산’은 ‘사운드 오브 뮤직’(로버트 와이즈, 1966)에 아카데미 음악상을 내주었지만(제작년도는 ‘쉘부르의 우산’이 빠르지만 미국 개봉시기 때문에 같은 해 후보에 올랐으므로) 이후, 미셸 르그랑은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노먼 주위슨, 1968), ‘42년의 여름’(로버트 멀리건, 1972), ‘엔틀’(바브라 스트라이샌드, 1983) 등으로 3회나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약 2년 전 타계할 때까지 연주와 작곡에 매달렸던 그는 어릴 적 바람대로 완벽히 음악 안에서 평생을 살았고, 이제 그의 음악과 함께 불멸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
비가 오는 날이면 한 번씩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몇 년 전, ‘라라랜드’(데미언 셔젤, 2016)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유로 많이 회자되었던 작품, ‘쉘부르의 우산’(자크 드미, 1964)이다. 고전의 힘이랄까. 처음 개봉한 지 반 세기가 훨씬 넘은 작품이지만 그 영상미와 음악은 관객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자크 드미 감독은 음악감독인 미셸 르그랑과 함께 이 영화를 모든 대사가 노래로 진행되는 ‘송 스루’ 방식으로 기획한다. 이는 오페라 공연의 감흥을 극장에서 느낄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배우를 비롯한 모든 제작진들에게 도전적인 시도였다.
1950년대 말, 프랑스의 항구도시 쉘부르에서 엄마를 도와 우산 가게를 하는 아가씨 ‘쥬느비에브’(까뜨리느 드뇌브)는 자동차 수리공 ‘기’(니노 카스텔누오보)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알제리 독립전쟁으로 기에게 소집영장이 날아오자 두 사람은 눈물의 이별을 하게 된다. 기의 아기를 가진 쥬느비에브는 날마다 전장으로부터 편지를 기다리지만 소식은 거의 오지 않고, 그 사이에 보석상 ‘까사르’(마크 미셸)가 고백을 해 온다. ‘쉘부르의 우산’은 프랑스인들에게 비극적이었던 현대사를 배경으로 당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낭만성을 탈피해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두 남녀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세월이 흘러 조우했을 때, 그들은 의외로 건조해 보인다.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룬 쥬느비에브와 기에게 현재의 행복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쉘부르의 우산’은, 조금은 쓸쓸한, 해피엔딩이다. ‘라라랜드’의 엔딩에도 이러한 감수성이 잘 묻어나 있다.
미셸 르그랑은 지휘자이자 재즈 피아니스트이며 프랑스 누벨바그의 중요한 작곡가로, 200여 편이 넘는 영화와 TV 드라마에 참여했다. ‘쉘부르의 우산’에서는 저 유명한 테마곡을 다양한 악기와 스타일로 변주해 삽입했다. 쥬느비에브와 기의 이별 장면에서 사용된 슬픔을 폭발시키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Je Ne Pourrai Jamais Vivre Sans Toi(I’ll wait for you)‘는 멜로드라마 OST의 정석과도 같다.
‘쉘부르의 우산’은 ‘사운드 오브 뮤직’(로버트 와이즈, 1966)에 아카데미 음악상을 내주었지만(제작년도는 ‘쉘부르의 우산’이 빠르지만 미국 개봉시기 때문에 같은 해 후보에 올랐으므로) 이후, 미셸 르그랑은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노먼 주위슨, 1968), ‘42년의 여름’(로버트 멀리건, 1972), ‘엔틀’(바브라 스트라이샌드, 1983) 등으로 3회나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약 2년 전 타계할 때까지 연주와 작곡에 매달렸던 그는 어릴 적 바람대로 완벽히 음악 안에서 평생을 살았고, 이제 그의 음악과 함께 불멸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