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텀.(사진-카이 EMK 제공) 21세기 공연가의 화두는 단연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다. 대중적 인지도를 지니고 있는 원작을 가져와 무대적 양식에 맞춰 새롭게 각색해 다시 즐긴다는 의미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니까 비슷하지않나 생각하면 엄청난 오해다. 무대적 문법에 맞춰 재구성된 콘텐츠는 이미 알고 있어도 다시 새로운, 심지어 더 즐거운 경험을 제공한다. ‘청출어람 청어람’의 콘텐츠 활용 공식이 무대위 공연세상에서도 흥미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무비컬이나 주크박스 뮤지컬 같은 장르다. 흘러간 왕년의 흥행 영화나 좋아했던 가수의 음악들로 꾸며진 무대용 콘텐츠들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노블컬’이라 불리는데, 소설을 의미하는 영어인 ‘노블’에 ‘뮤지컬’을 합성한 용어다. 아무래도 활자가 무대로 구현되며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매력을 더해놓은 것이 매력이자 볼거리요 즐길 거리다. 장발장이란 주인공으로 유명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이나 꼽추 콰지모도와 집시처녀 에스메랄드의 눈물나는 사랑 이야기가 담긴 ‘노트르담 드 파리’, 귀족들이 평민 계급의 아이를 납치해 일부러 입을 찢어 유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내용의 ‘웃는 남자’, 루이스 스티븐슨의 미스테리 소설을 각색한 ‘지킬 앤 하이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채롭게 변주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나 프랑스식 감수성으로 재구성한 동명 타이틀의 뮤지컬 그리고 오랜 세월 창작 뮤지컬로 흥행을 누려온 ‘명성황후’ 등이 모두 이런 사례들이다. 뮤지컬 팬텀.(사진-카이 EMK 제공) 최근 국내 무대에서 사랑받았던 작품 중에서도 OSMU의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바로 ‘팬텀’이다. 프랑스 작가인 가스통 르루가 1910년 발표했던 동명 타이틀의 소설이 원작이다. 젊은 시절 기자생활을 했던 작가는 당시 파리에서 실제 일어났던 몇몇 죽음과 미제 사건을 엮어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유령이라 불리는 인물이 살고, 그가 모든 미스테리의 배후라는 내용의 괴기 소설을 발표했다. 출판물 자체로도 엄청난 임기를 누렸지만, 특히 흑백 무성영화가 대중들로부터 사랑받았던 1920년대에는 괴물역 단골 영화배우인 론 채니가 특수분장을 하고 나왔던 흑백 무성영화로 전대미문의 흥행을 기록했다. 주인공이 늘 가면을 쓰고 다니고, 그 안에는 흉측한 괴물 같은 사내가 살고 있다는 강렬한 이미지는 영화의 흥행이 큰 기여를 했다. 훗날 칼라 영화가 만들어지며 샹들리에가 천정에서 떨어지는 특수효과가 더해지기도 하고, ‘13일의 금요일’이나 일본 괴기영화 ‘링’을 연상시키는 섬뜩한 이미지를 더해 스크린을 수놓는 경우들도 등장하며 기괴한 이야기의 단골 소재로 각광을 받았다. 뮤지컬 작품도 여러 편이다. 우리나라에선 영국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만든 작품이 제일 유명하다. 무대는 배고픈 예술이란 선입견을 깨뜨리고 공연산업도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는 선례를 남겼다. 실제로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이 기록적 매출을 보인 이후, 우리나라 공연계에서 뮤지컬의 성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뉴욕 타임즈에서는 브로드웨이를 능가(?)하는 추진력으로 심지어 뉴욕에서 실패한 작품까지 한국어로 번안하며 관객을 모으는 우리나라 공연가를 대서특필했을 정도니 ‘오페라의 유령’이 우리나라 공연계 나아가 문화산업 전반에 미친 영향은 가히 엄청난 수준임을 미루어 짐작할만하다. 지난 3월 17일 앙코르 무대의 막을 올린 뮤지컬 ‘팬텀’은 같은 원작으로 만들어진 무대용 콘텐츠이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아닌 모리 예스톤이 만든 또 다른 버전의 작품이다. 예스톤은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을 각색한 뮤지컬 ‘9(나인)’으로 토니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유명 뮤지컬 작곡가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이 판타지같은 상상력의 스토리텔링에 집중했다면 모리 예스톤은 보다 구체적이고 직설적이며 원작에 가까우면서도 미처 들려주지 못한 감춰진 뒷이야기라는 로맨틱한 정서를 전달해준다. 덕분에 ‘오페라의 유령’에선 만날 수 없던 유령의 출생 비밀이나 크리스틴에게 음악을 사사하는 과정 등 다채로운 장면들이 훨씬 사실감있게 묘사되는 것이 특징이다. 유독 ‘오페라의 유령’을 좋아하는 관객이 더 많이 무대를 찾는 이유도 바로 이런 배경 탓이다. 뮤지컬 ‘팬텀’의 한국어 공연은 우선 시각적으로 만족스럽다. 제작사인 EMK뮤지컬컴퍼니가 최근 선보이는 작품들에서 만날 수 있는 특징들을 이 작품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작품의 기본적인 틀거리는 외국 것을 가져오되 무대를 보는 재미는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글로컬화(Glocalization) 전략이다. 덕분에 외국 원작에서는 없었던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 속 상징적 이미지인 샹들리에의 추락 장면이 한국 무대에 추가됐고, 파리 지하 호수 위로 배가 떠다니는 장면도 덧붙여졌다. 제한된 공간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착시를 통해 효과적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배가 진행되는 반대 방향으로 배경 영상이 흐르는 별난 비주얼적 특수효과도 충실하게 더해졌다. 장면에 따라 바뀌는 유령의 가면은 그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며 화려한 장식을 따라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을 즐겼고, 소설까지 탐독했다면 분명 눈물 찔끔 나는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한국어 ‘팬텀’만의 차별화된 매력이다. 2021년 서울에서 막을 올린 앙코르 무대엔 주인공 유령 역으로 박은태와 카이, 전동석, 규현이 무대를 꾸민다. 모두 같은 역할로 무대에 나와 인기를 누렸던 익숙한 배우들이다. 사실 한국어 공연은 초연에서 박효신이 등장해 큰 이슈와 인기를 한 몸에 누렸는데, 이번무대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박은태나 카이 등은 조금은 결이 다른 감미로운 보컬을 선보인다. 소프라노 김소현과 임선혜, 이지혜의 무대는 클래식의 벨칸토 창법을 현란하게 구사하며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을 완성시킨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을 가장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은 사실 팬텀의 과거 회상 장면에 나오는 발레 시퀀스다. 마치 꿈을 꾸는 것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는 단연 압권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발리리나 김주원과 황혜민, 최예원 등이 번갈아 등장하는데, 군더더기없는 말끔한 안무를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몸 동작, 손 동작 하나 하나가 전율을 안겨준다. 이제 외국 원작을 가져와 단순히 복제만 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한 수준의 무대를 완성시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 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
뮤지컬 팬텀.(사진-카이 EMK 제공)
21세기 공연가의 화두는 단연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다. 대중적 인지도를 지니고 있는 원작을 가져와 무대적 양식에 맞춰 새롭게 각색해 다시 즐긴다는 의미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니까 비슷하지않나 생각하면 엄청난 오해다. 무대적 문법에 맞춰 재구성된 콘텐츠는 이미 알고 있어도 다시 새로운, 심지어 더 즐거운 경험을 제공한다. ‘청출어람 청어람’의 콘텐츠 활용 공식이 무대위 공연세상에서도 흥미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무비컬이나 주크박스 뮤지컬 같은 장르다. 흘러간 왕년의 흥행 영화나 좋아했던 가수의 음악들로 꾸며진 무대용 콘텐츠들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노블컬’이라 불리는데, 소설을 의미하는 영어인 ‘노블’에 ‘뮤지컬’을 합성한 용어다. 아무래도 활자가 무대로 구현되며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매력을 더해놓은 것이 매력이자 볼거리요 즐길 거리다. 장발장이란 주인공으로 유명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이나 꼽추 콰지모도와 집시처녀 에스메랄드의 눈물나는 사랑 이야기가 담긴 ‘노트르담 드 파리’, 귀족들이 평민 계급의 아이를 납치해 일부러 입을 찢어 유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내용의 ‘웃는 남자’, 루이스 스티븐슨의 미스테리 소설을 각색한 ‘지킬 앤 하이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채롭게 변주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나 프랑스식 감수성으로 재구성한 동명 타이틀의 뮤지컬 그리고 오랜 세월 창작 뮤지컬로 흥행을 누려온 ‘명성황후’ 등이 모두 이런 사례들이다.
뮤지컬 팬텀.(사진-카이 EMK 제공)
최근 국내 무대에서 사랑받았던 작품 중에서도 OSMU의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바로 ‘팬텀’이다. 프랑스 작가인 가스통 르루가 1910년 발표했던 동명 타이틀의 소설이 원작이다. 젊은 시절 기자생활을 했던 작가는 당시 파리에서 실제 일어났던 몇몇 죽음과 미제 사건을 엮어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유령이라 불리는 인물이 살고, 그가 모든 미스테리의 배후라는 내용의 괴기 소설을 발표했다. 출판물 자체로도 엄청난 임기를 누렸지만, 특히 흑백 무성영화가 대중들로부터 사랑받았던 1920년대에는 괴물역 단골 영화배우인 론 채니가 특수분장을 하고 나왔던 흑백 무성영화로 전대미문의 흥행을 기록했다. 주인공이 늘 가면을 쓰고 다니고, 그 안에는 흉측한 괴물 같은 사내가 살고 있다는 강렬한 이미지는 영화의 흥행이 큰 기여를 했다.
훗날 칼라 영화가 만들어지며 샹들리에가 천정에서 떨어지는 특수효과가 더해지기도 하고, ‘13일의 금요일’이나 일본 괴기영화 ‘링’을 연상시키는 섬뜩한 이미지를 더해 스크린을 수놓는 경우들도 등장하며 기괴한 이야기의 단골 소재로 각광을 받았다.
뮤지컬 작품도 여러 편이다. 우리나라에선 영국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만든 작품이 제일 유명하다. 무대는 배고픈 예술이란 선입견을 깨뜨리고 공연산업도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는 선례를 남겼다. 실제로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이 기록적 매출을 보인 이후, 우리나라 공연계에서 뮤지컬의 성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뉴욕 타임즈에서는 브로드웨이를 능가(?)하는 추진력으로 심지어 뉴욕에서 실패한 작품까지 한국어로 번안하며 관객을 모으는 우리나라 공연가를 대서특필했을 정도니 ‘오페라의 유령’이 우리나라 공연계 나아가 문화산업 전반에 미친 영향은 가히 엄청난 수준임을 미루어 짐작할만하다.
지난 3월 17일 앙코르 무대의 막을 올린 뮤지컬 ‘팬텀’은 같은 원작으로 만들어진 무대용 콘텐츠이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아닌 모리 예스톤이 만든 또 다른 버전의 작품이다. 예스톤은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을 각색한 뮤지컬 ‘9(나인)’으로 토니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유명 뮤지컬 작곡가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이 판타지같은 상상력의 스토리텔링에 집중했다면 모리 예스톤은 보다 구체적이고 직설적이며 원작에 가까우면서도 미처 들려주지 못한 감춰진 뒷이야기라는 로맨틱한 정서를 전달해준다.
덕분에 ‘오페라의 유령’에선 만날 수 없던 유령의 출생 비밀이나 크리스틴에게 음악을 사사하는 과정 등 다채로운 장면들이 훨씬 사실감있게 묘사되는 것이 특징이다. 유독 ‘오페라의 유령’을 좋아하는 관객이 더 많이 무대를 찾는 이유도 바로 이런 배경 탓이다.
뮤지컬 ‘팬텀’의 한국어 공연은 우선 시각적으로 만족스럽다. 제작사인 EMK뮤지컬컴퍼니가 최근 선보이는 작품들에서 만날 수 있는 특징들을 이 작품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작품의 기본적인 틀거리는 외국 것을 가져오되 무대를 보는 재미는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글로컬화(Glocalization) 전략이다. 덕분에 외국 원작에서는 없었던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 속 상징적 이미지인 샹들리에의 추락 장면이 한국 무대에 추가됐고, 파리 지하 호수 위로 배가 떠다니는 장면도 덧붙여졌다. 제한된 공간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착시를 통해 효과적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배가 진행되는 반대 방향으로 배경 영상이 흐르는 별난 비주얼적 특수효과도 충실하게 더해졌다. 장면에 따라 바뀌는 유령의 가면은 그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며 화려한 장식을 따라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을 즐겼고, 소설까지 탐독했다면 분명 눈물 찔끔 나는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한국어 ‘팬텀’만의 차별화된 매력이다.
2021년 서울에서 막을 올린 앙코르 무대엔 주인공 유령 역으로 박은태와 카이, 전동석, 규현이 무대를 꾸민다. 모두 같은 역할로 무대에 나와 인기를 누렸던 익숙한 배우들이다. 사실 한국어 공연은 초연에서 박효신이 등장해 큰 이슈와 인기를 한 몸에 누렸는데, 이번무대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박은태나 카이 등은 조금은 결이 다른 감미로운 보컬을 선보인다. 소프라노 김소현과 임선혜, 이지혜의 무대는 클래식의 벨칸토 창법을 현란하게 구사하며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을 완성시킨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을 가장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은 사실 팬텀의 과거 회상 장면에 나오는 발레 시퀀스다. 마치 꿈을 꾸는 것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는 단연 압권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발리리나 김주원과 황혜민, 최예원 등이 번갈아 등장하는데, 군더더기없는 말끔한 안무를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몸 동작, 손 동작 하나 하나가 전율을 안겨준다. 이제 외국 원작을 가져와 단순히 복제만 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한 수준의 무대를 완성시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 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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