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황동혁, 2017)에는 음악이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냉혹한 현실을 관조하는 영상의 결을 따라 소리 또한 조심스럽다. 눈 덮인 겨울 산성의 적요함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이나 삶과 죽음 사이의 심오한 공방을 강조하기 위해 때로 공간의 소리(엠비언스)도 숨을 죽이고, 악기는 한 발 뒤로 물러선다. 그 공백이야말로 <남한산성>을 격조 높은 사극으로 완성시킨 음악적 밑바탕이다. 이는 ‘영화의 빈 공간과 이미지의 감흥’을 중시하고 ‘시간과 공간의 소리’가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해왔던 이 영화의 음악 감독, 류이치 사카모토의 철학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 세계적인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처럼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로 <남한산성>이 한층 세련된 스타일을 성취하는데 공헌했다. 그에게 오스카상을 안겨준 <마지막 황제>(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87)부터 암투병을 하며 참여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2015)까지, 그는 매 작품마다 스스로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그가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나 ‘레인’처럼 멜로디가 강하고 콘서트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들을 많이 남겨주기를 기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항상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관성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공인으로서 그의 활동과 음악 작업 과정을 두루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스티븐 쉬블, 2017)에는 새로운 소리를 찾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찾아가는 그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남한산성>의 스코어 또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천재적 음악성과 더불어 우리 전통 음악과 역사, 한국영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땀방울이 더해진 결과다. <남한산성>은 그의 재능과 열정이 담긴 첫 한국영화였다. 앞으로도 국경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윤성은의 Pick 무비 / <디바> ![]()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이영은 수진에 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수진과 심하게 다툰다. 그 바람에 수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있던 두 사람은 도로 밑 절벽으로 추락하고, 수진은 실종되지만 이영은 구조되어 다시 운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영은 수진의 환영과 자책감으로 다이빙에 집중할 수가 없다. 이영의 무의식은 사고 당일보다 훨씬 더 전으로 돌아가 모든 인과 관계를 뒤섞어 놓는다. 다이빙 디바의 자리가 수진에서 이영으로 바뀌던 그 날부터 수진과 이영의 관계 또한 위태롭게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실오라기 같던 이마의 상처가 덧나고 곪아서 터져 버리는 과정 속에 오래 전 해결하지 못했던 수진과의 앙금은 이영을 광기로 몰아간다.
영화는 시시각각 변하는 이영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따라 거침없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블랙 스완>(2010, 대런 아로노프스키)과 같은 뛰어난 레퍼런스가 있기에 새롭다고 할 수는 없어도 아름답게 낙하해야만 이길 수 있는 다이빙의 성격과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인간의 심리가 그럴 듯한 대구를 이루며 결말까지 무리 없이 나아간다. 결국 공포의 근원은 타인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한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러닝 타임 이상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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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황동혁, 2017)에는 음악이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냉혹한 현실을 관조하는 영상의 결을 따라 소리 또한 조심스럽다. 눈 덮인 겨울 산성의 적요함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이나 삶과 죽음 사이의 심오한 공방을 강조하기 위해 때로 공간의 소리(엠비언스)도 숨을 죽이고, 악기는 한 발 뒤로 물러선다. 그 공백이야말로 <남한산성>을 격조 높은 사극으로 완성시킨 음악적 밑바탕이다. 이는 ‘영화의 빈 공간과 이미지의 감흥’을 중시하고 ‘시간과 공간의 소리’가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해왔던 이 영화의 음악 감독, 류이치 사카모토의 철학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세계적인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처럼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로 <남한산성>이 한층 세련된 스타일을 성취하는데 공헌했다. 그에게 오스카상을 안겨준 <마지막 황제>(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87)부터 암투병을 하며 참여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2015)까지, 그는 매 작품마다 스스로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그가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나 ‘레인’처럼 멜로디가 강하고 콘서트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들을 많이 남겨주기를 기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항상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관성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공인으로서 그의 활동과 음악 작업 과정을 두루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스티븐 쉬블, 2017)에는 새로운 소리를 찾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찾아가는 그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남한산성>의 스코어 또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천재적 음악성과 더불어 우리 전통 음악과 역사, 한국영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땀방울이 더해진 결과다. <남한산성>은 그의 재능과 열정이 담긴 첫 한국영화였다. 앞으로도 국경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윤성은의 Pick 무비 / <디바>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이영은 수진에 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수진과 심하게 다툰다. 그 바람에 수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있던 두 사람은 도로 밑 절벽으로 추락하고, 수진은 실종되지만 이영은 구조되어 다시 운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영은 수진의 환영과 자책감으로 다이빙에 집중할 수가 없다. 이영의 무의식은 사고 당일보다 훨씬 더 전으로 돌아가 모든 인과 관계를 뒤섞어 놓는다. 다이빙 디바의 자리가 수진에서 이영으로 바뀌던 그 날부터 수진과 이영의 관계 또한 위태롭게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실오라기 같던 이마의 상처가 덧나고 곪아서 터져 버리는 과정 속에 오래 전 해결하지 못했던 수진과의 앙금은 이영을 광기로 몰아간다.
영화는 시시각각 변하는 이영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따라 거침없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블랙 스완>(2010, 대런 아로노프스키)과 같은 뛰어난 레퍼런스가 있기에 새롭다고 할 수는 없어도 아름답게 낙하해야만 이길 수 있는 다이빙의 성격과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인간의 심리가 그럴 듯한 대구를 이루며 결말까지 무리 없이 나아간다. 결국 공포의 근원은 타인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한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러닝 타임 이상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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