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음악 분야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연주자들이 종이로 된 악보 대신, 아이패드 같은 스마트 기기에 입력된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컴퓨터를 통해 악보를 만드는 프로그램은 이미 보편화된 지 오래이고요. 최신 기술은 편리함을 안겨주지만 우리는 여전히 옛 방식에서 최신 기술로는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발견하곤 합니다. 이메일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꾹꾹 눌러쓴 손편지에서 느껴지는 정겨움마저 대체할 수는 없겠지요.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진 악보는 깔끔하고, 수정도 쉽게 이루어지지만, 작곡가 고유의 필체가 담긴 자필 악보를 바라보는 특별함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베토벤의 자필 악보는 어땠을까요? 깔끔하기로 소문난 모차르트의 자필 악보와는 달리, 베토벤의 악보는 혼란스러운 느낌마저 주는 것으로 악명높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수정의 흔적과 쉽게 알아보기 힘든 베토벤의 필체가 합쳐진 덕분인데요. 음악학자 쿠퍼에 따르면, 베토벤은 “모든 구상이 머리 속에서 끝났으니, 그 모든 것을 옮겨 적으면 돼” 라고 표현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악보에서 보여지는 혼란은, 그가 곡의 구상이 ‘완벽하게’ 끝나지는 않은 상태에서, 악보를 적기 시작했음을 보여주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이 자필 악보를 적는 동안, 그가 구상했던 곡의 근본적인 특징이 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쿠퍼는 단언합니다.
사실, 베토벤이 젊을 때부터 악보를 알아보기 힘들게 적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젊을 때의 자필 악보들 중에는 꼼꼼하게 잘 적혀있는 것들도 있어서, 이것이 그의 자필 악보가 아니라, 전문 카피스트(Copyist)가 옮겨 적은 악보라고 여겨진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필체는 나이가 들며 계속해서 악화된 것이었죠. 남아있는 그의 자필 악보들 중 초기 작품보다는 후기 작품의 수가 더 많다는 점이, 이러한 ‘악명’에 일정부분 기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베토벤이 디테일한 부분까지 수정을 거듭해가며 자필 악보에 그의 음악을 펼쳐놓으면, 카피스트들이 그 악보를 깨끗하게 옮겨 적는 작업이 뒤따랐습니다. 이것은 곡의 연주와 출판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죠. 베토벤의 악보를 필사하는 것은 전문가인 그들에게도 무척이나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위에 서술된 대로 악보가 혼란 그 자체인 경우가 많아, 베토벤의 의도를 정확히 알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베토벤이 적어놓은 음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했으며, 알아보기 힘든 필체로 적힌 그의 지시사항이 악보 구석에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필사 과정이 끝나면, 베토벤은 필사된 악보를 매우 꼼꼼하게 점검하였고, 출판에 이르기 전 또다시 수정하기도 했지요.
![]() (베토벤 교향곡 9번 2악장 중 트리오 시작 부분-목관파트. 자필 악보와 필사본 악보 비교: 자필 악보 (위/출처: Staatsbibliothek zu Berlin), 필사본 악보 (아래/출처: Juilliard Manuscript Collection)
흥미로운 것은 자필 악보를 대하는 베토벤의 태도입니다. 자필 악보에 담겨 있는 그의 작품이 필사와 점검을 거쳐 출판에 이르게 되면, 베토벤은 더 이상 자필 악보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 악보들은 잘 간수되지 못하고 분실되곤 했지요. 그의 사망 이후 남겨진 그의 악보들 중 초기 작품들보다 후기 작품들의 악보가 많은 것은 이런 그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곡에 대한 본인의 최종 생각은 출판된 악보에 담겨 있으니, 자필 악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베토벤은 생각했던 것일까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이러한 무관심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의 교향곡 9번 자필 악보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유명한 작곡가의 자필 악보가 새로 발굴되면 학계의 큰 관심을 받으며, 그 악보들이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니까요. 그런데, 사실 베토벤 당대의 관점에서 보면, 자필 악보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이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음악학자 두프너에 따르면, 자필 악보의 가치에 대한 인식은 베토벤이 살던 시기에 점차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베토벤은 그러한 가치의 형성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겠지요. 이 시기에 자필 악보들은 오늘날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었습니다. 한 예로, 베토벤이 사망한 해에 (1827년), 그의 남겨진 자필 악보들은 경매에 부쳐졌는데, 그 가격은 베토벤의 가계 물품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베토벤의 자필 악보들은 독일 본의 베토벤 하우스(Beethovenhaus Bonn)와 베를린 국립 도서관(Staatsbibliothek zu Berlin)에 대부분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디지털화 작업을 통하여 우리는 상당수의 자필 악보를 온라인으로 언제나 볼 수 있지요. 본의 베토벤 하우스에서 베토벤의 자필 악보들을 직접 열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토벤의 많은 오리지널 자필 악보들을 열람하면서 베토벤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것들이 변해도, 베토벤 자필 악보의 가치는 계속해서 빛날 것입니다.
![]()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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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음악 분야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연주자들이 종이로 된 악보 대신, 아이패드 같은 스마트 기기에 입력된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컴퓨터를 통해 악보를 만드는 프로그램은 이미 보편화된 지 오래이고요. 최신 기술은 편리함을 안겨주지만 우리는 여전히 옛 방식에서 최신 기술로는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발견하곤 합니다. 이메일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꾹꾹 눌러쓴 손편지에서 느껴지는 정겨움마저 대체할 수는 없겠지요.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진 악보는 깔끔하고, 수정도 쉽게 이루어지지만, 작곡가 고유의 필체가 담긴 자필 악보를 바라보는 특별함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베토벤의 자필 악보는 어땠을까요? 깔끔하기로 소문난 모차르트의 자필 악보와는 달리, 베토벤의 악보는 혼란스러운 느낌마저 주는 것으로 악명높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수정의 흔적과 쉽게 알아보기 힘든 베토벤의 필체가 합쳐진 덕분인데요. 음악학자 쿠퍼에 따르면, 베토벤은 “모든 구상이 머리 속에서 끝났으니, 그 모든 것을 옮겨 적으면 돼” 라고 표현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악보에서 보여지는 혼란은, 그가 곡의 구상이 ‘완벽하게’ 끝나지는 않은 상태에서, 악보를 적기 시작했음을 보여주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이 자필 악보를 적는 동안, 그가 구상했던 곡의 근본적인 특징이 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쿠퍼는 단언합니다.
사실, 베토벤이 젊을 때부터 악보를 알아보기 힘들게 적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젊을 때의 자필 악보들 중에는 꼼꼼하게 잘 적혀있는 것들도 있어서, 이것이 그의 자필 악보가 아니라, 전문 카피스트(Copyist)가 옮겨 적은 악보라고 여겨진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필체는 나이가 들며 계속해서 악화된 것이었죠. 남아있는 그의 자필 악보들 중 초기 작품보다는 후기 작품의 수가 더 많다는 점이, 이러한 ‘악명’에 일정부분 기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베토벤이 디테일한 부분까지 수정을 거듭해가며 자필 악보에 그의 음악을 펼쳐놓으면, 카피스트들이 그 악보를 깨끗하게 옮겨 적는 작업이 뒤따랐습니다. 이것은 곡의 연주와 출판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죠. 베토벤의 악보를 필사하는 것은 전문가인 그들에게도 무척이나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위에 서술된 대로 악보가 혼란 그 자체인 경우가 많아, 베토벤의 의도를 정확히 알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베토벤이 적어놓은 음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했으며, 알아보기 힘든 필체로 적힌 그의 지시사항이 악보 구석에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필사 과정이 끝나면, 베토벤은 필사된 악보를 매우 꼼꼼하게 점검하였고, 출판에 이르기 전 또다시 수정하기도 했지요.

(베토벤 교향곡 9번 2악장 중 트리오 시작 부분-목관파트. 자필 악보와 필사본 악보 비교: 자필 악보 (위/출처: Staatsbibliothek zu Berlin), 필사본 악보 (아래/출처: Juilliard Manuscript Collection)
흥미로운 것은 자필 악보를 대하는 베토벤의 태도입니다. 자필 악보에 담겨 있는 그의 작품이 필사와 점검을 거쳐 출판에 이르게 되면, 베토벤은 더 이상 자필 악보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 악보들은 잘 간수되지 못하고 분실되곤 했지요. 그의 사망 이후 남겨진 그의 악보들 중 초기 작품들보다 후기 작품들의 악보가 많은 것은 이런 그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곡에 대한 본인의 최종 생각은 출판된 악보에 담겨 있으니, 자필 악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베토벤은 생각했던 것일까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이러한 무관심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의 교향곡 9번 자필 악보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유명한 작곡가의 자필 악보가 새로 발굴되면 학계의 큰 관심을 받으며, 그 악보들이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니까요. 그런데, 사실 베토벤 당대의 관점에서 보면, 자필 악보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이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음악학자 두프너에 따르면, 자필 악보의 가치에 대한 인식은 베토벤이 살던 시기에 점차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베토벤은 그러한 가치의 형성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겠지요. 이 시기에 자필 악보들은 오늘날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었습니다. 한 예로, 베토벤이 사망한 해에 (1827년), 그의 남겨진 자필 악보들은 경매에 부쳐졌는데, 그 가격은 베토벤의 가계 물품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베토벤의 자필 악보들은 독일 본의 베토벤 하우스(Beethovenhaus Bonn)와 베를린 국립 도서관(Staatsbibliothek zu Berlin)에 대부분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디지털화 작업을 통하여 우리는 상당수의 자필 악보를 온라인으로 언제나 볼 수 있지요. 본의 베토벤 하우스에서 베토벤의 자필 악보들을 직접 열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토벤의 많은 오리지널 자필 악보들을 열람하면서 베토벤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것들이 변해도, 베토벤 자필 악보의 가치는 계속해서 빛날 것입니다.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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