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 원종원의 커튼 콜 (Curtain Call) 무대와 영상, 그 절묘한 융합의 매력을 찾으려는 노력
편집부 기자 | jwlee@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0-09-29 11:10 수정 2020-09-29 11:13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결국 무대가 된서리를 맞았다. 철저한 방역과 감염 대비로 그나마 간간히 유지돼오던 공연들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됨에 따라 결국 민간극장까지 띄어앉기를 준수하는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이제 우리나라 공연들은 만석을 기록하고 티켓을 모두 팔아도 평소의 절반뿐인 매출을 기록할 수밖에 없다. 배우들이, 창작진이, 기술 스탭들이 혹자는 택배를 하러 다니고, 또 다른 이는 세일즈 영업사원이 됐다는 연락을 전해온다. 그 직업들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예술가가 예술 현장에서 쫓기듯 떠나고, 호구지책을 마련하기 위해 돈벌이 현장으로 내몰리는 작금의 상황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언젠가 좋은 시절이 다시 와도 이미 사라진 문화예술 인력의 부재는 쓰라린 상처로 남을지 모른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다는 말이 있다. 공연계가 꼭 그렇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작금의 현실은 무척 안타깝지만, 공연계로 하여금 새로운 도전을 과거보다 더 과감하게 시도하게 만드는 환경 또한 되고 있다. 이른바 공연의 영상화에 대한 여러 실험들이다. 당장 이번 추석 시즌을 전후로 공연보다 저렴한 영상 이용료를 지불하는 인기 공연들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할 예정이다. 시아준수로 유명한 뮤지컬 배우 김준수가 주연인 ‘모차르트’는 인기 뮤지컬 배우 박은태 출연진과 더불어 공개될 예정이며, 서울예술단의 인기 레퍼토리인 ‘잃어버린 얼굴 1895’, 대학로의 인기 뮤지컬 작품인 ‘여신님이 보도계셔’, ‘팬레터’ 등이 이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아날로그의 매력을 담은 공연이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되고 유포되는 영상 미디어의 세계에서 어떤 파장을 남길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하지만 무대와 영상의 결합이 요즘 들어 시작된 것은 사실 아니다. 이미 무대와 영상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왕성하게 시도되어졌고, 꽤나 굵직한 성과나 기록들을 남기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무대와 영상의 밀월관계는 꽤나 역사있는 만남이자 썩 잘 어울리는 변화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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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뮤지컬 영화가 그렇다. 심지어 뮤지컬하면 영화를 먼저 떠올리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은 거의 대부분 뮤지컬을 스크린을 통해 처음 만났다. 1950~60년대 헐리웃의 대형 영화사들은 무대의 영상화에 꽤나 적극적이었고, 그래서 제작되어진 글로벌 흥행 영상 콘텐츠들이 그 주인공이다. ‘아가씨와 건달들’, ‘왕과 나’, ‘마이 페어 레이디’, ‘사운드 오브 뮤직’ 등 굵직한 뮤지컬 영화들이 만들어졌고,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영화가 무대용 뮤지컬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분명하다. 대중적인 콘텐츠를 재가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가 쉬운 탓이다. 무대는 매일 한정된 장소에서 반복되어야 하는 비복제의 속성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한꺼번에 수천, 수만 곳의 상영관에서 동시다발로 상영되거나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소비될 수 있고, 또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등 새로운 창구(window)를 통해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흥행이 검증된 콘텐츠를 글로벌 스타의 기용을 통해 포장해내는 일은 여간 수지맞는 장사가 아닐 수 없었다. 1970년대 이후 보다 다양한 대중매체의 등장으로 뮤지컬과 영화간의 밀월관계를 소원해졌지만, 2000년대 들어서 다시 뮤지컬 영화의 흥행 공식들이 등장하며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기도 하다. 영화로 만들어진 ‘시카고’나 ‘오페라의 유령’ 혹은 ‘스위니 토드’, ‘레 미제라블’, ‘캣츠’ 등이 대표적이다. 

무대만 영상으로 흘러간 것은 아니다. 반대로 영화가 무대로 유입되거나 차용된 사례도 있다. 특히 큰 인기를 누리는 것이 바로 무비컬(Movical)의 등장이다. 물론 영화(Movie)와 뮤지컬(Musical)의 합성어로, 원작 영화를 무대에 재구성해내는 일련의 제작 방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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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컬의 역사도 뮤지컬 영화의 그것 못지않게 열정적이고 화려하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카비리아의 밤’이나 ‘8과 ½’을 무대로 재구성한 뮤지컬 ‘스위트 채러티’나 ‘나인’이 바로 대표적인 초창기 사례들이다. 저예산이나 엽기, 컬트 혹은 B급 SF영화들도 무비컬의 소재로 각광받기도 했다. 영화 ‘포비든 플래넷’이나 ‘거미 여인의 키스’는 각각 무대용 콘텐츠로 재활용돼 ‘돌아온 금단의 별’이나 ‘거미 여인의 키스-더 뮤지컬’로 제작돼 글로벌 흥행을 기록했다. ‘리틀 숍 오브 호러스’의 경우는 더 흥미로운데, 1980년 첫 선을 보인 영화가 82년 소극장용 무비컬 제작의 모티브가 됐고, 다시 무비컬의 인기가 86년 뮤지컬 영화의 재제작으로 이어진 경우라서 그렇다. 영화가 무비컬의 소재가 되고, 다시 무비컬이 뮤지컬 영화로 환생하는 ‘돌고 도는’ 콘텐츠 재가공과 부가가치 극대화가 흥미롭다.  

무비컬의 본격적인 등장과 대중적 인기의 확산은 특히 최근들어 조명받는 트렌드다.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요즘만큼 왕성했던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2000년대 이후 세계 극장가에 올려진 무비컬 수만도 족히 수십편이 훌쩍 넘는다. ‘프로듀서스’, ‘헤어스프레이’, ‘메리 포핀스’, ‘빌리 엘리어트’, ‘스패머랏’, ‘더티 댄싱’, ‘금발이 너무해’, ‘제너두’, ‘영 프랑켄쉬타인’ 심지어 ‘반지의 제왕’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호명하기조차 벅차다. 

무비컬의 인기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산업적인 효과가 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이미 대중성이 검증된 콘텐츠를 재활용함으로써 흥행의 리스크를 줄일 뿐 아니라 쉽게 대중적 관심을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관객 입장에서는 이미 익숙한 줄거리를 라이브로 감상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이해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지나간 추억에 대한 복고나 향수도 만끽할 수 있다. 평론가들이 “이런 환경에서 과연 누가 새로운 이야기와 음악에 도전할까”라며 무비컬 제작 트렌드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대중적 인기가 지속되는 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무비컬의 확산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무작정 융합만 한다고 좋은 콘텐츠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보편적 원리가 그러하듯, 무대와 영상의 융합 콘텐츠가 좋은 평가와 흥행을 얻기 위해서는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진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영상 문법과 무대 문법은 유사한 것 같지만 엄연히 다르다. 영상에서는 연출자의 의도가 카메라 샷(shot)과 씬(scene)의 구성을 통해 구현되지만, 무대에서는 열린 공간을 이용한 현장 구성의 과정(process)을 통해 형상화된다. 많은 문화산업 장르들 중에 유독 영상과 무대의 ‘궁합’이 잘 어울리는 이유도 이들의 이종교배를 통한 생산물은 익숙하면서도 또다시 새로운 예술적 체험을 대중들에게 선사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단순히 영화의 서사구조 재연만으로 혹은 무대의 영상적 기록만으로 이 융합 콘텐츠의 묘미가 창조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적인 무대와 영상의 만남에 대한 실험과 도전이 왕성히 시도되고 있는 요즘, 무대와 영상 관계자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제작의 기본 철칙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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