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20여명의 노동자들은 플라스틱 통과 주전자를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는 소모품이 아니다. 일방적인 비정규직 전환을 즉각 철회하라!” 권총을 소지한 전경들이 그들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물리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농성은 11시 30분이 지나서야 끝났다.
결국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 2017’의 개막을 알리는 오프닝 세레모니와 이날 첫 번째 컨퍼런스였던 ‘Cosmetics of the Future: the Digital Economy and New Languages, from Ecology to Technology’는 취소됐다. 이후 시위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와 이탈리아의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전년보다 더욱 커진 규모, 하지만···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 2017’이 3월 16일부터 20일까지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개최됐다. 흔히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는 지구촌을 대표하는 화장품·뷰티 박람회, 업계 종사자라면 국적을 떠나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으로 통한다. 행사 50주년을 기념해 볼로냐 피에레는 어느 때보다 열과 성을 다했다. 지난해 9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설명회를 가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볼로냐 피에레에 따르면 올해 박람회에는 세계 69개국의 2677개 업체가 참가했다. 또 150개 나라에서 25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행사장을 찾았다. 지난해와 비교해 참가업체는 167개가 늘어났고, 관람객 수는 전년과 비슷하지만 올해의 경우 해외 방문객의 비율이 16% 증가했다. 한국과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폴란드, 헝가리, 중국, 대만, 일본,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아랍에미리트 등 29개 나라가 국가관을 구성했으며,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9000건 이상의 바이어 상담이 이루어졌다.
일견 성공적인 결과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한 국내 참가사 관계자는 “거의 10년 전부터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에 참가해오고 있는데 갈수록 사람들이 줄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에는 각 전시장에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관람객이 많았다. 반면 올해의 경우 더욱 한산해졌다. 이런 분위기라면 이제 ‘코스모프로프 아시아 홍콩’으로 완전히 무게추가 기울어졌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내 참가사 관계자는 “신생업체라 처음 참가했는데 예상과 달라서 적잖게 당황했다. 토요일에는 어느 정도 북적였지만 다른 날들은 여기가 세계에서 가장 큰 박람회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관람객이 적었다”며 “특히 유모차를 끌고 온 여성들, 단체로 온 학생들을 비롯해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전체 관람객 중 진성 바이어는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욱 부정적인 견해도 있었다. 한 국내 에스테틱업체 관계자는 “지난 5년 동안 매년 참여하고 있는데 실망감이 쌓여 이제는 내년에 참가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는 세계 최대의 화장품·뷰티 박람회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부스에 둔 가방이나 물품이 없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심지어는 고가의 피부미용 장비가 도난된 경우도 있었다. 당시 주최 측에 CCTV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는데, 알려진 바와 달리 CCTV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뒤셀도르프와 뮌헨 등 독일에서 열리는 뷰티 박람회 참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K-뷰티의 유럽 정복은 ‘미션: 파서블’
이런 와중에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한국이 글로벌 화장품시장의 새로운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은 극동아시아의 작은 분단국가가 아니었다. 특히 세계 뷰티업계에서 한국은 단연 독보적인 라이징스타이자 퍼스트 러너였다. 유럽을 비롯한 해외 화장품업계 관계자들은 K-코스메틱의 모든 것에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다. 전시장에서도, 컨퍼런스룸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코스맥스와 연우 같은 빅네임 외에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 2017’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국내 업체는 현대아이비티와 코코스타였다. 이들이 참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유는 한국이라는 프리미엄에 차별화된 제품력과 콘셉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아이비티의 ‘비타브리드 C12’ 시리즈와 코코스타의 ‘슬라이스 마스크 시트’ 시리즈에 현지인들은 열광했다. 박람회 기간 동안 이들 부스에 참관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현대아이비티 독일지사 관계자는 “이미 일본에서 기록적인 성공을 거둔 데다 지난해 ‘코스모프로프 북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상을 받은 게 컸다. 물론 현대그룹 계열사라는 사실도 이점으로 작용했다”면서 “전시회가 개막하자마자 소문을 듣고 찾아온 바이어들이 쇄도해 정신없이 바쁘면서도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 올해부터 독일지사를 중심으로 유럽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번 박람회를 계기로 확실하게 탄력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K-뷰티 열풍에 대해서도 상세히 전했다. “최근 독일 넷플릭스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는 한국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K-팝의 인기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지난해 화장품 편집숍 더글라스의 페이스북에 다수의 한국 브랜드가 론칭된다는 포스팅이 올라왔을 때 열광적인 반응의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아내가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요즘 한국행을 지원하는 동료들이 늘고 있다고 하더라. 물론 한국에서 한국 화장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코코스타는 톡톡 튀는 제품 콘셉트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케이스다. 회사 관계자는 “유럽 바이어들은 일반 마스크팩과 달리 과일이나 꽃 모양의 시트를 개별적으로 붙이는 콘셉트에 놀라며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느냐고 감탄했다. 오직 한국에서만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지난해에도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에 참가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20개 나라와 유통 계약을 체결했는데, 올해에도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뷰티시장에서 K-코스메틱의 현재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자리는 컨퍼런스였다. 특히 18일 오전 민텔이 주도한 세미나 ‘From K Factor to Global K Factor: Are Korea Products Becoming the New Trendsetter in the Global Market?’에는 좌석이 모자라 서서 듣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며, 한국의 주요 제품과 트렌드 등을 소개하는 각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참석자들은 일제히 스마트폰 셔터를 눌렀다. 자못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들에게 한국 화장품은 가장 시급하게 연구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 2017’은 화장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의 위상과 함께 중국과의 뚜렷한 격차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중국은 337개로 한국(163개)보다 2배 이상 많은 업체들이 참가했으나 중국관보다 KOTRA와 코이코, IBITA가 각각 구성한 한국관에 훨씬 많은 관람객이 방문했다. 최근 중국의 매서운 추격으로 한국과의 격차가 5년 이내로 당겨졌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는 게 요원해 보였다.
한 국내 참가업체 관계자는 “잠시 짬을 내 중국관을 돌아봤는데 역시나 용기와 완제품 모두 한국에 뒤쳐진 상황이었다. 따라서 중국이 할 수 있는 방법은 한국 OEM·ODM 업체와 손을 잡는 방법밖에 없는데, 자체적인 노하우와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규모와 자본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화장품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력은 여전히 건재··· 행사 기획은 성공적
모든 일에는 음과 양이 있는 법. 단점을 뒤로 하고 장점에 주목한다면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 2017’은 뷰티를 매개로 한 세계인들의 축제였다. 50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기획된 ‘코스모프로프 퍼퓸 팩토리’를 비롯해 ‘코스모팩 더 월’, ‘인터내셔널 바이어 라운지’, ‘톤즈 오브 뷰티’, ‘엑스트라오디너리 갤러리’, ‘프리미엄 퍼퓨머리’, ‘글래머 미’, ‘50 애니 벨리’ 등의 스페셜 공간과 ‘온 헤어’, ‘헤어 링’, ‘유나이티드 바버쇼’, ‘코스모 토크’, ‘스파 심포지엄’ 등의 이벤트는 충실하고 다채로웠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50 애니 벨리’였다. 이 역시 5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기획된 공간으로 코스모프라임 전시장 통로에 걸린 수십 개의 액자를 통해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뷰티의 변천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스킨케어,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향수 등 뷰티 자체와 더불어 정치·트렌드, 라이프스타일, 레코드 위민(Record Women), 아이콘·스타 등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뷰티 트렌드가 사회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시사했다.
‘코스모 토크’라는 이름이 붙은 컨퍼런스의 경우 뷰티스트림즈와 민텔, WGSN, 페클러스 파리(Peclers Paris), 오가닉 모니터, 센트디그리스(Centdegres), GCI, 더 벤치마킹 컴퍼니, SZWEDO 그룹 등 주요 트렌드 분석 및 전망 업체들이 대거 참여해 총 20개의 깊이 있는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토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주제 발표와 함께 패널 토론을 실시해 보다 심층적인 정보를 전달했다.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 2017’은 제조·패키지 업체들을 모은 코스모팩과 프레스티지 업체들을 집결시킨 코스모프라임을 16일부터 19일까지 개최하고, 메인 박람회를 17일부터 20일까지 개최함으로써 참관객으로 하여금 충분한 여유를 두고 관람과 상담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일부 참가사 관계자들은 4일의 전시 기간은 너무 길다는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박람회의 규모를 감안한다면 기꺼이 납득할 만한 일정이었다.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가 정상의 위치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스킨케어, 메이크업, 향수, 에스테틱, 헤어, 네일 등 뷰티와 관련된 전 분야의 최신 트렌드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 군데에 치우치지 않은 종합 박람회로서의 위상은 이번에도 건재했다. 특히 아시아 뷰티 박람회가 약점을 보이곤 하는 헤어와 네일 전시관이 오히려 코스메틱관보다 성황을 이루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 박람회의 헤드라이너 역시 화장품업체가 아닌 헤어 브랜드 로레알 프로페셔널 파리였다.
‘50 애니 벨리’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인류는 과학 없이도 살 수 있다. 심지어 빵이 없어도 살 수 있다. 하지만 뷰티 없이는 살 수 없다. 뷰티가 없다면 우리가 삶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기에 비밀이 있다. 여기에 모든 스토리가 있다.’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다.
■ 이탈리아 화장품시장 리포트
합리적인 가격, 우수한 품질 강조하는 전략이 성공의 키포인트
이탈리아는 G7의 일원이었으며, 지난해 1조8525억 달러로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인도에 이어 세계 GDP 순위 8위에 오른 유럽의 선진국이다. 로마로 대변되는 찬란한 역사와 문화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이탈리아는 그리스에 이은 유럽 경제의 화약고로 꼽히고 있다. 특히 2010년 이후 일반기업과 금융권, 가계 등 주요 경제 주체들의 부채 규모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은행들의 부실채권 규모는 3600억 유로에 달한다.
2014년 11월 이탈리아의 실업률은 13.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5~24세의 청년층 실업률은 무려 43.9%. 이런 상황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탈리아의 한 연구기관은 2004년 30세이던 청년들의 재정 독립 평균 연령이 2020년에는 38세, 2030년에는 48세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50세가 다 돼서야 비로소 자립이 가능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열악한 셈이다. 볼로냐 피에레의 노동자들이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 2017’ 개막에 맞춰 시위를 벌인 것은 이런 연유였다.
볼로냐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피렌체는 이탈리아의 5대 도시 중 하나로, 르네상스의 총본산으로 일컬어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르네상스의 대표 예술가들이 당시 패권을 쥐고 있던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 피렌체에 주요 작품을 남겼다.
대도시이자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피렌체에서는 다양한 화장품 매장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의 화장품 리테일은 편집숍, 브랜드숍, 백화점, 마트, 약국, 에스테틱, 살롱, 직접판매, 온라인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곳에서도 세포라는 비교적 높은 선호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곳은 키코(KIKO)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키코는 철저하게 가성비로 승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립스틱 가격이 3~6유로에 불과해 현지에서는 ‘국민 화장품 브랜드’로 통한다. 마치 초창기의 미샤를 연상케 한다. 키코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역시 이탈리아의 경제가 좋지 못한 탓이다.
한편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세포라 매장에는 닥터자르트와 스킨푸드, 토니모리, 카오리온이 입점해 있었는데, 여기에서 국내 브랜드의 효과적인 이탈리아 진출 전략을 가늠할 수 있었다. 현지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이탈리아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가격에 우수한 품질을 강조하는 전략이 주효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중산층이 빠르게 감소하고 빈부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지 않는 한 프레스티지 브랜드는 성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20여명의 노동자들은 플라스틱 통과 주전자를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는 소모품이 아니다. 일방적인 비정규직 전환을 즉각 철회하라!” 권총을 소지한 전경들이 그들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물리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농성은 11시 30분이 지나서야 끝났다.
결국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 2017’의 개막을 알리는 오프닝 세레모니와 이날 첫 번째 컨퍼런스였던 ‘Cosmetics of the Future: the Digital Economy and New Languages, from Ecology to Technology’는 취소됐다. 이후 시위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와 이탈리아의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전년보다 더욱 커진 규모, 하지만···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 2017’이 3월 16일부터 20일까지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개최됐다. 흔히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는 지구촌을 대표하는 화장품·뷰티 박람회, 업계 종사자라면 국적을 떠나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으로 통한다. 행사 50주년을 기념해 볼로냐 피에레는 어느 때보다 열과 성을 다했다. 지난해 9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설명회를 가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볼로냐 피에레에 따르면 올해 박람회에는 세계 69개국의 2677개 업체가 참가했다. 또 150개 나라에서 25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행사장을 찾았다. 지난해와 비교해 참가업체는 167개가 늘어났고, 관람객 수는 전년과 비슷하지만 올해의 경우 해외 방문객의 비율이 16% 증가했다. 한국과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폴란드, 헝가리, 중국, 대만, 일본,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아랍에미리트 등 29개 나라가 국가관을 구성했으며,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9000건 이상의 바이어 상담이 이루어졌다.
일견 성공적인 결과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한 국내 참가사 관계자는 “거의 10년 전부터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에 참가해오고 있는데 갈수록 사람들이 줄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에는 각 전시장에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관람객이 많았다. 반면 올해의 경우 더욱 한산해졌다. 이런 분위기라면 이제 ‘코스모프로프 아시아 홍콩’으로 완전히 무게추가 기울어졌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내 참가사 관계자는 “신생업체라 처음 참가했는데 예상과 달라서 적잖게 당황했다. 토요일에는 어느 정도 북적였지만 다른 날들은 여기가 세계에서 가장 큰 박람회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관람객이 적었다”며 “특히 유모차를 끌고 온 여성들, 단체로 온 학생들을 비롯해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전체 관람객 중 진성 바이어는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욱 부정적인 견해도 있었다. 한 국내 에스테틱업체 관계자는 “지난 5년 동안 매년 참여하고 있는데 실망감이 쌓여 이제는 내년에 참가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는 세계 최대의 화장품·뷰티 박람회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부스에 둔 가방이나 물품이 없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심지어는 고가의 피부미용 장비가 도난된 경우도 있었다. 당시 주최 측에 CCTV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는데, 알려진 바와 달리 CCTV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뒤셀도르프와 뮌헨 등 독일에서 열리는 뷰티 박람회 참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K-뷰티의 유럽 정복은 ‘미션: 파서블’
이런 와중에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한국이 글로벌 화장품시장의 새로운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은 극동아시아의 작은 분단국가가 아니었다. 특히 세계 뷰티업계에서 한국은 단연 독보적인 라이징스타이자 퍼스트 러너였다. 유럽을 비롯한 해외 화장품업계 관계자들은 K-코스메틱의 모든 것에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다. 전시장에서도, 컨퍼런스룸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코스맥스와 연우 같은 빅네임 외에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 2017’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국내 업체는 현대아이비티와 코코스타였다. 이들이 참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유는 한국이라는 프리미엄에 차별화된 제품력과 콘셉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아이비티의 ‘비타브리드 C12’ 시리즈와 코코스타의 ‘슬라이스 마스크 시트’ 시리즈에 현지인들은 열광했다. 박람회 기간 동안 이들 부스에 참관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현대아이비티 독일지사 관계자는 “이미 일본에서 기록적인 성공을 거둔 데다 지난해 ‘코스모프로프 북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상을 받은 게 컸다. 물론 현대그룹 계열사라는 사실도 이점으로 작용했다”면서 “전시회가 개막하자마자 소문을 듣고 찾아온 바이어들이 쇄도해 정신없이 바쁘면서도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 올해부터 독일지사를 중심으로 유럽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번 박람회를 계기로 확실하게 탄력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K-뷰티 열풍에 대해서도 상세히 전했다. “최근 독일 넷플릭스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는 한국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K-팝의 인기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지난해 화장품 편집숍 더글라스의 페이스북에 다수의 한국 브랜드가 론칭된다는 포스팅이 올라왔을 때 열광적인 반응의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아내가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요즘 한국행을 지원하는 동료들이 늘고 있다고 하더라. 물론 한국에서 한국 화장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코코스타는 톡톡 튀는 제품 콘셉트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케이스다. 회사 관계자는 “유럽 바이어들은 일반 마스크팩과 달리 과일이나 꽃 모양의 시트를 개별적으로 붙이는 콘셉트에 놀라며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느냐고 감탄했다. 오직 한국에서만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지난해에도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에 참가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20개 나라와 유통 계약을 체결했는데, 올해에도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뷰티시장에서 K-코스메틱의 현재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자리는 컨퍼런스였다. 특히 18일 오전 민텔이 주도한 세미나 ‘From K Factor to Global K Factor: Are Korea Products Becoming the New Trendsetter in the Global Market?’에는 좌석이 모자라 서서 듣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며, 한국의 주요 제품과 트렌드 등을 소개하는 각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참석자들은 일제히 스마트폰 셔터를 눌렀다. 자못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들에게 한국 화장품은 가장 시급하게 연구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 2017’은 화장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의 위상과 함께 중국과의 뚜렷한 격차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중국은 337개로 한국(163개)보다 2배 이상 많은 업체들이 참가했으나 중국관보다 KOTRA와 코이코, IBITA가 각각 구성한 한국관에 훨씬 많은 관람객이 방문했다. 최근 중국의 매서운 추격으로 한국과의 격차가 5년 이내로 당겨졌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는 게 요원해 보였다.
한 국내 참가업체 관계자는 “잠시 짬을 내 중국관을 돌아봤는데 역시나 용기와 완제품 모두 한국에 뒤쳐진 상황이었다. 따라서 중국이 할 수 있는 방법은 한국 OEM·ODM 업체와 손을 잡는 방법밖에 없는데, 자체적인 노하우와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규모와 자본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화장품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력은 여전히 건재··· 행사 기획은 성공적
모든 일에는 음과 양이 있는 법. 단점을 뒤로 하고 장점에 주목한다면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 2017’은 뷰티를 매개로 한 세계인들의 축제였다. 50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기획된 ‘코스모프로프 퍼퓸 팩토리’를 비롯해 ‘코스모팩 더 월’, ‘인터내셔널 바이어 라운지’, ‘톤즈 오브 뷰티’, ‘엑스트라오디너리 갤러리’, ‘프리미엄 퍼퓨머리’, ‘글래머 미’, ‘50 애니 벨리’ 등의 스페셜 공간과 ‘온 헤어’, ‘헤어 링’, ‘유나이티드 바버쇼’, ‘코스모 토크’, ‘스파 심포지엄’ 등의 이벤트는 충실하고 다채로웠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50 애니 벨리’였다. 이 역시 5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기획된 공간으로 코스모프라임 전시장 통로에 걸린 수십 개의 액자를 통해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뷰티의 변천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스킨케어,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향수 등 뷰티 자체와 더불어 정치·트렌드, 라이프스타일, 레코드 위민(Record Women), 아이콘·스타 등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뷰티 트렌드가 사회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시사했다.
‘코스모 토크’라는 이름이 붙은 컨퍼런스의 경우 뷰티스트림즈와 민텔, WGSN, 페클러스 파리(Peclers Paris), 오가닉 모니터, 센트디그리스(Centdegres), GCI, 더 벤치마킹 컴퍼니, SZWEDO 그룹 등 주요 트렌드 분석 및 전망 업체들이 대거 참여해 총 20개의 깊이 있는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토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주제 발표와 함께 패널 토론을 실시해 보다 심층적인 정보를 전달했다.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 2017’은 제조·패키지 업체들을 모은 코스모팩과 프레스티지 업체들을 집결시킨 코스모프라임을 16일부터 19일까지 개최하고, 메인 박람회를 17일부터 20일까지 개최함으로써 참관객으로 하여금 충분한 여유를 두고 관람과 상담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일부 참가사 관계자들은 4일의 전시 기간은 너무 길다는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박람회의 규모를 감안한다면 기꺼이 납득할 만한 일정이었다.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가 정상의 위치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스킨케어, 메이크업, 향수, 에스테틱, 헤어, 네일 등 뷰티와 관련된 전 분야의 최신 트렌드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 군데에 치우치지 않은 종합 박람회로서의 위상은 이번에도 건재했다. 특히 아시아 뷰티 박람회가 약점을 보이곤 하는 헤어와 네일 전시관이 오히려 코스메틱관보다 성황을 이루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 박람회의 헤드라이너 역시 화장품업체가 아닌 헤어 브랜드 로레알 프로페셔널 파리였다.
‘50 애니 벨리’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인류는 과학 없이도 살 수 있다. 심지어 빵이 없어도 살 수 있다. 하지만 뷰티 없이는 살 수 없다. 뷰티가 없다면 우리가 삶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기에 비밀이 있다. 여기에 모든 스토리가 있다.’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다.
■ 이탈리아 화장품시장 리포트
합리적인 가격, 우수한 품질 강조하는 전략이 성공의 키포인트
이탈리아는 G7의 일원이었으며, 지난해 1조8525억 달러로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인도에 이어 세계 GDP 순위 8위에 오른 유럽의 선진국이다. 로마로 대변되는 찬란한 역사와 문화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이탈리아는 그리스에 이은 유럽 경제의 화약고로 꼽히고 있다. 특히 2010년 이후 일반기업과 금융권, 가계 등 주요 경제 주체들의 부채 규모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은행들의 부실채권 규모는 3600억 유로에 달한다.
2014년 11월 이탈리아의 실업률은 13.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5~24세의 청년층 실업률은 무려 43.9%. 이런 상황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탈리아의 한 연구기관은 2004년 30세이던 청년들의 재정 독립 평균 연령이 2020년에는 38세, 2030년에는 48세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50세가 다 돼서야 비로소 자립이 가능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열악한 셈이다. 볼로냐 피에레의 노동자들이 ‘코스모프로프 월드와이드 볼로냐 2017’ 개막에 맞춰 시위를 벌인 것은 이런 연유였다.
볼로냐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피렌체는 이탈리아의 5대 도시 중 하나로, 르네상스의 총본산으로 일컬어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르네상스의 대표 예술가들이 당시 패권을 쥐고 있던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 피렌체에 주요 작품을 남겼다.
대도시이자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피렌체에서는 다양한 화장품 매장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의 화장품 리테일은 편집숍, 브랜드숍, 백화점, 마트, 약국, 에스테틱, 살롱, 직접판매, 온라인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곳에서도 세포라는 비교적 높은 선호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곳은 키코(KIKO)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키코는 철저하게 가성비로 승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립스틱 가격이 3~6유로에 불과해 현지에서는 ‘국민 화장품 브랜드’로 통한다. 마치 초창기의 미샤를 연상케 한다. 키코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역시 이탈리아의 경제가 좋지 못한 탓이다.
한편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세포라 매장에는 닥터자르트와 스킨푸드, 토니모리, 카오리온이 입점해 있었는데, 여기에서 국내 브랜드의 효과적인 이탈리아 진출 전략을 가늠할 수 있었다. 현지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이탈리아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가격에 우수한 품질을 강조하는 전략이 주효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중산층이 빠르게 감소하고 빈부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지 않는 한 프레스티지 브랜드는 성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뷰티누리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