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대마를 합법화하는 국가가 늘어나면서 한국도 국가 차원에서 대마 산업 활성화를 위해 연구 및 규제 완화 준비에 돌입했다. 뇌전증 치료제로 알려진 대마 추출 성분의 의약품들을 국내에서 제조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다음은 화장품이다. |
산업용 대마를 합법화하는 국가가 늘어나면서 한국도 국가 차원에서 대마 산업 활성화를 위해 연구 및 규제 완화 준비에 돌입했다. 뇌전증 치료제로 알려진 대마 추출 성분의 의약품들을 국내에서 제조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다음은 화장품이다.
산업용 대마는 최근 의학은 물론 미용, 건축 등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며 규제 완화의 흐름을 탔다. 2018년 미국이 농업법을 통과시키면서 환각성 물질 함유량이 일정 이하인 개량 대마 종이 농산물로 인정됐다. 2020년엔 UN 산하 마약위원회가 대마를 4등급에서 1등급으로 격하시켰고, 이후 대마 합법화 움직임은 말 그대로 '그린 러쉬' 상태다. 캐나다와 우루과이는 의료용에 더해 기호용 대마까지 합법화했다. 최근엔 화장품 원료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악명 높은 마약인 대마를 왜 합법화하려고 할까? 대마는 쉽게 말해 향정신성 물질로 알려진 마리화나와 산업용인 헴프(HEMP)로 구분된다. 대마의 환각성 물질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은 주로 잎과 꽃에서 추출되는데, 산업용으로 개량된 햄프는 THC 함량이 낮다. 현재 한국을 비롯 여러 국가에서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이 헴프다. 특히 이 헴프에서 추출된 칸나비디올(CBD)이라는 물질이 바람의 핵이다.
CBD는 THC 함량이 매우 낮고, 중독성 및 환각작용이 없어 치료제로 각광받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발표한 '칸나비디올 CBD 예비보고서'에 따르면 CBD는 알츠하이머, 불안감 감소, 암세포 사멸, 뇌 발작 감소, 통증, 메스꺼움 등의 치료제로 효능을 보인다. 화장품 원료로는 강한 항산화 효과로 인한 염증 완화, 여드름 치료, 콜라겐 보존, 피부 톤 개선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유럽 '속도↑' · 아시아 '제각각' · 미국 '안전성 평가 먼저'
각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먼저 유럽은 CBD 활용에 적극적이다. 2020년 유럽사법재판소가 "EU 회원국들 간의 CBD 거래를 막을 수 없고, CBD는 마약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본격적인 합법화의 물꼬를 텄다. 이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역시 CBD를 사실상 식품으로 인정했고, 2021년 CBD를 화장품 원료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현재 대마 농사에 생산 보조금까지 지급하고 있다.
아시아에선 태국이 2019년부터 의료용 대마 사용을 허용하고, 2022년 6월부터는 규제 마약류에서 대마를 완전히 제외하며 스타트를 끊었다. 현재 태국에선 식약청의 사전허가를 받으면 THC 함유량이 0.2%를 초과하는 화장품, 식품, 의약품 등의 생산과 판매가 가능하다.
이와 반대로 홍콩은 지난 2월부터 CBD를 위험 약물로 규정해, CBD를 포함한 제품의 제조·수입·수출·판매를 모두 금지했다. 2022년 실시된 현지 화장품 및 식품 검사 결과에서 다량의 THC가 검출되고, 각국의 규제에 차이가 있어 해외에서 수입된 CBD 제품 중 THC를 완전히 걸러낼 수 없다는 점이 규제의 배경으로 지목됐다. 현재 홍콩에서 CBD를 취급하면 최대 종신형의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
중국은 일찌감치 2002년부터 성숙한 종자의 대마 성분 제품을 허가했고 2015년엔 법도 제정했으나, 2021년 금지했다. 특히 중국 의약품감독관리국(NMPA)이 금지 화장품 목록에 대마를 등재, CBD 화장품 생산·유통·수입이 원천적으로 금지됐다. 중국의 경우는 시중에 CBD 화장품이 유통 중이고, 대대적으로 마케팅까지 하던 중에 규제된 상황이라 업계에서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일본에선 '성숙한 줄기 및 종자'에서 추출된 CBD는 대마로 간주하지 않고, 1999년부터 CBD 포함 의약품, TBC가 함유되지 않은 CBD 제품이나 CBD 오일의 수입을 허가했다. 이에 일본에서도 시중에 허가된 CBD 화장품이 유통 중이다. 그러나 허용 범위가 좁고, 아직 수입만 허가하는 단계다. 일본에서도 일부 지역에서 대마를 생산하고 있지만 '대마초 취급규제관리법'이 있어 일본에서 생산된 대마로 상품을 개발하거나 의약품을 제조하기는 어렵다. 2021년부터 일본 후생노동성이 의료용 대마의 합법화를 위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지만 그 속도가 더디다.
한편, 대마 합법화의 흐름을 이끈 미국은 아이러니하게도 한정된 용도, 의약품이 아닌 경우는 대마 유래 성분, 특히 CBD의 활용을 엄격하게 또는 간접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간접적 제한은 화장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미국의 화장품 금지 성분 목록에 CBD 및 대마 유래 성분은 없다. 그렇다고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CBD 성분을 규제하는 기타 연방법 및 FDA 지침에 준해 화장품 성분도 간접적으로 규제를 받아왔다. 2018년 미국 농업 법안(US Farm Bill)이 통과되고 THC 성분이 0.3% 미만 함유된 헴프 추출 CBD가 합법화됨에 따라 화장품 성분으로의 CBD는 딱 그 정도만 허용됐다.
지난 3월 말 화장품의 자발적 등록제(VCRP)가 폐지되면서, 앞으로 미국의 CBD 성분 화장품들은 FDA에 안전성 정보를 등록해야 한다. 또, 지난 2월 FDA는 화장품 성분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전문가 패널(CIRS)에 2024년 안전성 평가 우선순위 목록의 첫머리에 CBD를 포함해달라고 요청했다. 합법화를 위한 조치라고 보긴 어렵다. 지난 1월에도 FDA는 미국 건강 보충제 단체들의 CBD 사용 합법화 안을 거절하고 CBD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사례를 들며 부작용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전성 평가를 통해 성분 제한 목록의 등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대마 합법화를 지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향후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 한국은 '대마 특구' 운영... 2024년까지 법 개정 계획
국내 상황은 어떨까. 치료 목적의 의약품은 법적으로 허용됐고 학술용으로도 취급이 가능하지만, 그 외의 경우는 엄격하게 규제 중이다.
한국은 2018년 마지막으로 개정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공무 또는 학술연구 목적 대마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 수입하는 의료용 대마는 사용이 합법화됐다. 그 외의 경우는 취급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껍질을 완전히 제거한 대마 씨앗(헴프씨드)과 씨앗 추출 오일(헴프씨드 오일)은 THC 및 CBD가 일정 이하인 경우 화장품 및 식품의 원료로 사용가능하다. 시중에 유통중인 헴프 유래 화장품은 대부분 이 헴프씨드 오일을 함유한 것이다.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는 경북 안동시 일대를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고 대마의 의료적 활용에 대한 부분적 특례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특구 내에선 THC 함유량이 0.3% 이하인 대마의 합법적 생산·가공·판매가 가능하다. 또한 헴프의 미수정 암꽃과 잎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재배와 CBD 추출·제조, 헴프 관리 등의 산업용 헴프 실증 사업을 수행 중이다. 현재 총 34개 기관과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의약 규제혁신 100대 과제'에 대마 규제 완화를 포함했다. 2024년까지 산업용 헴프의 재배와 대마 성분 의약품의 국내 제조를 허용하기 위해 법 개정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산업용 대마 재배 및 제품 생산이 가능해진다면 CBD 추출을 통한 화장품 제조와 수입·수출까지 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화장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 흐름을 타고 있어 화장품 규제도 곧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다만 지금껏 유통된 헴프씨드 오일의 시장 반응이 약했고, 소비자들의 헴프에 대한 거부감 해소가 우선이라 상황을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