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그널]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판화의 지점, 版畫 지도그리기
안현정 기자 | media@beautynury.com 플러스아이콘
입력 2023-02-02 06:00 수정 2023-02-02 06:00
문화사회학에서 사용하는 ‘지형학/위상학’의 개념은 ‘판화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현재적 질문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2000년대 이후 ‘지도그리기(Cartography)’에 대한 개념은 장르의 한정성에 대한 예술계의 질문 속에서 다양한 논의의 중심 틀로 발전해 왔다. ‘지도그리기’는 지리정보를 담는 인공적인 생산물로서 지도의 의미뿐만 아니라 “예술계 안에서 판화의 생존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라는 판화의 존립여부와도 맥을 같이 할만한 주제이다. 

기존의 지도그리기가 목적 달성을 위한 관습적인 기술 또는 운용이었다면 최근에 대두되는 논점은 “문화적 지도그리기를 포함하는 대안적 위치정하기를 통해 장르의 새로운 지향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지리학적 과정으로서의 판화가 어떻게 미술계(art world) 속에서 판화의 터전을 ‘생성-발전-공존’시킬 것인지를 ‘판화지도 NEWTRO(어제와 오늘)’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기술발전으로 인한 판매시스템의 발달은 가상현실과 기계프린트의 무분별한 확산으로 판화개념의 변화와 표현의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다. 장르해체의 시대 속에서 “판화개념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확장시킬 것인가, 기존 질서를 어떻게 (유지 혹은 발전시켜) 지속가능한 구조로 작동시킬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의식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미술 속 판화, 위기인가 대안인가  
 

▲ 임영길, 오독부-거미, 17×21×1.5cm(접을 때), 50×75cm(펼칠 때), woodcut on Korean paper, 유황

이에 관한 다양한 논점을 건드린 전시가 지난해 7월 강남 유나이티드갤러리 #판화지도_뉴트로 전시에서 소개됐다. 참여작가는 Retro-trans 파트(가나다순)는 김유림, 김이진, 김찬현, 김희진, 민경아, 송대섭, 신상우, 안유선, 양미성, 여우전, 윤세희, 이상미, 이은진, 임영길, 정미옥, 조향숙, 진보라, 채다영, 한규성, 홍승혜 등이고, 새로운 전환(New-trans) 파트는 미디어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권미혜, 권순왕, 김지혜, 성태진, 신혜영, 오태원, 차민영, 최성욱, 최제이, 하임성 등 대표적인 현대판화가들이 참가했다. 

판화는 기술발전의 핵심을 최첨단에서 반영해왔다. 15세기 판화기술이 본격화된 이래 판화가들은 가장 빠른 기술력을 지닌 시각화된 복제 이미지를 생산해 냈다. 예술사의 흐름 속에서 판화는 처음의 정보전달자의 위치에서 예술의 한 축을 담당하는 매체로서의 위치를 확보해 왔고, 판화기술의 발전, 예술사와 연동한 시각에서 작가의 창작 의지가 반영된 ‘현대판화가’로서의 가치를 확고히 해 왔다. 21세기 이후 등장하고 있는 복제기술의 발전은 사진과 미디어, 설치와 NFT 등에 이르기까지 판화개념의 확장성을 야기함과 동시에 “굳이 판화라는 장르를 아카데믹한 미술계와 연동해야 하는가?”라는 위기의식 또한 초래한 것이 사실이다. 

기존 판화개념과 멀리 떨어진 작품들을 어떤 방식으로 연동해 판화개념의 확장성으로 지칭해야 하는가는 앞으로 지속될 세미나의 논제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30여명의 회원들이 참가한 이전 전시에서도 제목만 바뀐 채 전시가 지속될 뿐, 판화계를 활성화 시킬 다양한 가능성들이 깊게 논의됐는가는 다시금 생각해볼 문제이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와 기술복제는 보드리야르가 제시한 상징가치로서의 시뮬라크르 속에서 표현 양식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따라 그 정의와 영역도 확장되었다. 특히 확장성 있는 판화개념을 판화계에서 동의하더라도 이를 미술계와 대중들이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에 따라 ‘위기와 대안’ 그 어느 쪽으로도 해석 가능하다는 점을 회원들 스스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까지도 기술력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므로 21세기 현대 판화의 개념을 완벽하게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판화사의 흐름 속에서 현대판화의 새로운 모색은 다양한 토의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할 필요가 있다. 

판화(版畵)의 용어 정립 문제부터 판(版)을 가로지른 넓은 의미에서의 개념해석에 이르기까지, 커뮤니케이션과 미술 이데올로기의 변화 속에서 현대미술가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개인성의 분출은 판화의 기술적 특성(기술과 형식, 의미의 재해석)과 더불어 ‘혁신과 보수의 상호 공존’이라는 틀 속에서 재조합할 필요가 있다. 


뉴트로의 관점에서 본 판화개념의 확장 
 

▲ 08.하임성_ 사계, 그리고 봄03 V02_1분 45초 Single Channel Video_2021

시각적 소통 안에서 판화는 그래픽(graphics)·판화(printmaking)·프린트(prints) 등의 ‘인쇄된 이미지’에 한정하던 시대는 디디 위베르만(G.Didi Huberman)이 제시한 ‘프린트 패러다임’ 이후, 단순한 복제에서 동시대적 창작 언어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판화개념을 뉴트로의 관점에서 논한다면 전통영역과 현대영역을 아우르는 정반합의 관점에서 관점에서 새로운 대안성의 접점과도 만날 수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뉴트로 문화는 문화예술계 전반에 퍼져있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의 융합적 시도로,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을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되새기는 시각의 전환과 확장(Transition and extension of vision; 이하 trans)을 강조한다. 몇 해 전부터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복고 열풍의 관점에서 보자면, 레트로(Retro)라고 불리던 복고 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뉴트로(Newtro)’에 해당된다. 뉴트로를 문화사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 없는 MZ세대들이 오래된 문화에 갖는 현상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뉴트로를 판화적 정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문화의 주체로서 과거와 현재의 개념을 어떻게 판화가 수용할 것인가라는 ‘확장적 정의’로 해석 가능하며 뉴트로에 트렌스라는 메타/변환의 관점을 덧붙인다면 기억의 대상이 아닌 프린트 패러다임 이후의 창작/상상 욕구를 ‘새로운 아방가르드’라는 관점에서 끌어내는 개념 전략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존재하지 않는 경험을 존재하는 것처럼 재현하는 이미지의 힘, 그리고 가상의 이미지에 지배당하고 있는 신세대들과의 접점이 늘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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