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윤리위원회는 1976년 “'방수가 완벽한 여성 생리대'라는 표현이 시청자에게 혐오감이나 악감정을 줄 우려가 있다”며 방송금지처분을 내렸다. 광고에서 ‘생리대’라는 용어가 직접적으로 언급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40년도 더 지난 후였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면 겪는 당연한 생리 현상을 미디어에서 제대로 언급할 수 있게 된 것이 불과 5~6년 전의 일이라니.
하지만 숨겨야 하고, 달리 언급해야 하며, 남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생리는 이제 갔다. 진짜 소비자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생리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인식을 기민하게 캐치하는 기업들이 새로 나타나고 있고, 기존의 기업들도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모습이 관측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뷰티 산업은 각 카테고리별 경계가 흐려지고, 정신적 케어를 겸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말한다. 화장품과 위생용품도 마찬가지다. 두 품목은 실제로, 함께 쇼핑하는 소비자들이 많고, 유통망도 겹친다. 뷰티 기업들에 이 분야가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애경산업, 유한킴벌리 등과 같이 뷰티와 위생용품 사업을 동시에 전개하는 기업들도 많다. 울리브영 역시 자사 앱에서 월경 관리를 돕는 'W케어 서비스'를 전개하고 있다. 생리통을 개선하기 위한 진통제를 만드는 제약사들도 위생용품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있다.
다만 변화가 진행되고 있고, 사회적 인식이 중요한 분야인 만큼, 섣불리 접근하면 시대착오적이라는 오명을 쓸 수 있기에 주의는 필요하다.
민텔은 기업들에게 소비자들에 대한 '포용성'을 강조하고, 월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노력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또한 제품을 실제로 사용하는 소비자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민텔은 강조했다.
실제 소비자를 포용하라
역사적으로 여성용품과 관련한 산업은 대부분의 사업처럼 남성들이 주도하고, 메시지를 관리해 왔다. 지금도 생리대를 만들고 판매하는 기업들의 구성을 살펴보면 여성 임원은 소수다. 최근 몇 년 사이에야 여성 CEO와 여성 개발자들이 참여했음을 강조하는 브랜드와 위생용품이 보이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민텔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5명 중 1명 미만, 영국 성인 3분의 1만이 ‘생리와 관련한 광고 표현이 정확하고 솔직하다’고 응답했다. 즉, 약 70~80%의 소비자들은 여전히 업계가 생리를 표현하는 단계부터 실제 소비자를 포용하지 않는다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시대는 변했고, 소비자들의 주장도 점차 선명해지고 있다. 민텔은 과거 이 산업에서 위생용품을 묘사하던 방식에서 발전해, 실제 소비자들에게 '대표성'을 부여할 수 있도록, 정확한 묘사와 솔직한 광고,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먼저 시도되어야 할 부분은, 월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타파하는 일이다. 아직도 월경, 생리와 관련해선 제대로 지칭하는 것을 꺼리거나 이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반감이 만연하다. 화를 내는 여성을 보며 ‘생리 중이냐’고 비아냥대는 행위, 생리 중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돌려서 표현하려는 여러 노력들이 이에 해당한다.
국내에선 2018년 처음으로 '생리'라는 단어가 광고에 등장했다. 나트라케어의 광고는 생리라는 단어를 금기시하는 우리 사회의 불문율에 "그 날이 도대체 뭔데?"라며 반기를 들었다. '그 날에도 밝게 빛나야 한다'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기존 생리대 광고들과는 달리 월경 중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했다. 해당 광고의 댓글 창을 보면 "기존 한국 생리대 광고들을 반박하는 느낌이 들어 통괘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나트라케어의 광고에 환호하는 소비자를 목격한 업계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이후 고정관념에 반하는 메시지를 담은 광고가 잇따랐다. 물론 아직은 부족하다. 여성환경연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월경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광고는 43.7%에 달했다. 업계의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도 생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키기 위한 여러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의 위생용품 브랜드 Honey Pot은 생리대 광고에서 붉은 피를 강조하고, 이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교육을 병행 중이다. 또 다른 미국 생리용품 브랜드 Kotex도 주류 업체들이 생리대 광고에서 사용하던 파란색 액체보다 사실적인 빨간색으로 대체하는 광고를 선보였다. 페미니스트 인권에 중점을 둔 단체 Crea는 생리를 보다 긍정적으로 표현해 유해한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전통적 성 관념에서 탈피하기
또한 민텔은 성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성 중립성을 수용하는 방식의 마케팅도 포용성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흡수형 위생용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 중엔 기존 관념상의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따르지 않는 소비자도 많고, 스스로를 남성으로 인식하는 '트렌스젠더 남성'들도 있다. '여성' 용품의 전통적 이미지를 굳이 강조하지 않고도 충분히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는 논란의 여지도 있다. 실제로 트렌스젠더 남성을 위해 디자인된 Vuokkoset의 탐폰은 반발 여론도 컸다. 이 제품의 패키지를 보면 한쪽면엔 ‘FOR MEN’으로 표기돼 있다. 즉 ‘남성 용품’처럼 보이게 디자인한 것. 물론 바로 옆면에 이어서 ‘STRUATION’을 인쇄해 ‘FOR MENSTRUATION(월경을 위하여)’으로 표기했다. 이 패키지는 '혁명적'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고, 브랜드에겐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비난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10대 딸들을 위해 유기농 위생용품을 찾다가 창업했다는 브랜드 My Boxshop은 제품의 디자인에 성 중립적 색을 사용하고, 깔끔하고 직관적인 이미지로 브랜드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Einhorn이란 독일 브랜드는 성별 포용성을 강조하면서도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탐폰, 패드, 생리컵 등을 다양하게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또 다른 신생 위생용품 브랜드 TOTM은 패키지 디자인으 로 주목받았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신생 기업, 스타트업이다. 젊은 브랜드들이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에서 탈피한 패키지만으로도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은, 아직 이 분야가 기업들에게 틈새시장으로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어려운 행보일 수 있지만, '첫 발걸음'을 딛는 기업은 그만큼 새로운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민텔은 설명했다.
모든 주기의 고통 해결하기
모든 소비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생리통을 겪는다. 그중엔 증상이 매우 심해 습관적으로 진통제 등을 복용하는 사례도 많다. 진통제는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종종 변화를 줄 필요가 있는데, 이 분야에서 약을 대신할 혁신적인 방법을 제안하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예일대 졸업생들이 만든 스타트업 Sprxng는 재사용가능한 생리 디스크(생리컵)를 만들어 공개했다. 이 제품은 쉽게 삽입하고 제거할 수 있도록 설계됐을뿐 아니라, 생리컵에서 발생하는 압력을 이용해 생리통을 완화하는 치료 기술을 접목해 실제로 생리통을 경감해준다고 한다.

통증을 줄여주는 마약성 진통제처럼, 생리용품에 대마에서 추출한 CBD(칸나비디올)를 주입한 제품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Daye라는 영국 브랜드는 고농도 CBD 추출물에서 환각성 물질인 THC(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 제거하는 특허 기술을 통해 탐폰에 CBD 추출물을 흡수시켜 판매했다. 이 브랜드는 "저희 탐폰은 귀하를 취하게 하지 않을 것이며, 탐폰을 가지고 공항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작은 유머까지 자랑하고 있다.
한편, 월경이라는 과정은 단순 그 기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민텔은 75%의 여성이 생리 전 부정적인 증상을 경험하며, 10%의 여성들은 월경 후 증후군을 경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생리 전에 머리가 아프거나, 생리 후 우울감이 심해지는 등의 증상이 그것이다.
생리 기간의 건강을 챙기고 고통을 경감해 주기 위해 출범했다는 기업 delune은 국내에도 진출해 있는 브랜드 라엘과 함께 협업을 진행했다. delune의 호르몬제, 라엘의 생리대, 히팅패치 등을 묶어 제공하는 방식으로 생리 전후의 호르몬 불균형과 신경적 질환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게 했다.
생리 전/후의 증상들은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인식이 확대되는 단계다. 민텔은 브랜드들이 이러한 생리 전/후 증상들을 케어하는 방향으로 다양한 카테고리로 사업을 다각화할 수 있는 기회를 지금부터 모색하라고 제언했다. 특히 월경 후 증후군은 증상의 유형과 심각성에서 PMS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띠는 만큼, 관련 제품 시장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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