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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그널]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공공취향의 발견, 안에서 즐기는 예술과 거리에서 누리는 축제

입력시간 : 2020-12-18 08:37       최종수정: 2020-12-1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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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성의 구조변동, 그들만의 예술에서 모두를 위한 예술로”

동시대 사회는 문화·예술·교육 등을 시장경제의 차원에서 정의함으로써 각 영역 간 활동 자체가 갖는 특성보다는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와 결과를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다문화 공동체’로 전환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가시적으로든 비가시적으로든 많은 문제를 초래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문화는 행위하는 인간에 의해 정치적으로 안정을 얻는 공적 영역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며, 아름다운 사물들을 전시하는 공간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즉 문화의 역할은 공적 영역의 본질을 드러내는 동시에 미적인 것을 ‘공공(公共, public audience)'을 향해 제시한다는 것이다. 자본의 논리가 ‘상품으로서의 예술’을 추구할 지라도, 문화예술은 ‘공공성(公共性, publicness)’을  담보한 진리추구를 통해 미의 생산과 수용에 기여해야 한다. 쉽게 말해 장소성이 그들만의 리그인 ‘공연장 혹은 갤러리’에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광장 혹은 거리’로 바꿨을 때, 공공취향이 발견되고 풍부한 문화발전에 기여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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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마임축제현장과 포스터(출처:한국관광공사)

공공공연의 발견, 국내외 거리극 축제를 톺아보다.  

코로나19가 문화예술계에 발목을 잡은 가장 큰 명제는 ‘집합금지에 관한 명령’이다. 모이는 것이 금지되다보니 다양한 거리행사는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공공장소에서 행해지는 거리극이란, ‘거리’와 ‘연극’이란 명사가 결합된 용어로 밖에서 즐기는 ‘공공공연(公共公演, Public Demonstration)’이란 뜻이다. 여기서 ‘극’이란 장르의 한정성 때문에 ‘거리예술’ 혹은 ‘거리축제’라고도 불린다. 이 형태의 원형은 서양의 퍼레이드 혹은 동양의 장터극에서 유래한다.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행렬과 중세의 광대들의 축제(Fête des fous)에 기원을 둔 이 형태는 동·서양 할 것 없이 15~19세기 오락거리를 제공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공공영역에서 대중과 직접 호흡하는 방식은 20세기 중반이후 일반화됐는데, 이는 장비사용 면에서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최소화시켰고 대중을 관람의 입장에서 공연자체를 만드는 주체적 입장으로 전환시켰다. 특히 196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마임극단의 창립은 전통연극 시스템과 공공공연 역할에 다양한 질문을 제시하였다. 

해외 거리극 축제를 주도해온 국가는 단연코 영국이다. 영국의 거리예술은 대중에게 공공장소를 특별하게 소유하고 있다는 민주화된 예술형태를 지향한다. 공공장소에서의 상연은 남녀노소가 넓게 참여할 수 있도록 대부분 무료로 제공된다. 연간 열리는 대규모 축제부터 작은 반나절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영국을 찾은 거리극 관객들은 언제든지 본인의 스캐쥴에 맞는 공연과 만날 수 있다. 

스톡튼 국제 리버사이드 페스티벌, 런던의 그리니치+도크랜드 국제 페스티벌, 윈체스터 햇 페어, 런던 내셔널 씨어터의 워치디스스페이스, 맨체스터의 XTRAX, 런던의 템즈페스티벌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출판과 마케팅 분야에 있어서 가장 성공적인 국가는 프랑스로, 약 1,000여개의 공연단체와 300여개의 축제가 있다. 기간별 프로그램부터 살롱축제와 같은 국제적 규모의 행사까지, 영국보다 체계적인 거리예술축제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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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대표적 거리극축제, 템즈페스티벌 (출처:http://www.thamesfestival.org/) 

2003년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이어진 2020 서울거리예술축제 포스터 (출처: 서울문화재단)

그렇다면 한국의 거리극 축제는 어디쯤 와 있을까. 한국에서 축제가 개최된 시기는 문민정부가 국제화를 지향한 1995년 이후로, 관주도의 지역관련 축제가 2000년대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공연예술축제는 지역축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에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특정기간 동안 대규모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핵심인력들이 자리 잡기도 전에 해체된다는 단점을 띤다. 예술축제가 이벤트성으로 흐르면서 전문화된 시야와 정체성이 요구되었는데, 이를 보완하고자 최근에는 전문예술감독제를 시행하여 최소한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장 큰 문제는 민간이 아닌 관(官)이 주도하기 때문에 정치성을 띤다는 점, 성과주의에 함몰되어 다양한 가능성이 배제된다는 점에 있다. 거리극이 추구해온 젊은 장르로서의 자율성은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활용의 부조화에 직면해 있으며, 수도권 혹은 대도시에 한정되는 축제라는 점에서 ‘수준 높은 지역마케팅’으로까지 연결되기 어렵다. 통영국제음악제나 평창대관령국제음악제는 공연장 중심의 문화라는 점에서 지역민들의 적극적인 수용엔 어려움이 따른다. 이렇듯 축제운영의 전문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프랑스나 영국처럼 도시마케팅 수단으로서 민관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거리극 축제가 모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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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안산거리극축제 포스터와 폐막식 시민참여 현장 (출처 : www.ansanfest.com) 

공공전시의 다변화,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공개 

공공미술이란 용어는 존 윌렛(John Willet)이 1967년 『도시 속의 미술(Art in a City)』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기존 전시장 미술, 이른바 제도권 미술에 대한 비판으로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국내에서 행해지는 공공미술은 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 큐레이터, 평론가, 컬렉터 등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어 윌렛의 초기 의도를 역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공공미술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전시되는 작품을 지칭하는데, 이 경우 ‘장소 지정형 미술(Site-Specific Art)’이란 용어가 함께 사용된다. 

광화문 흥국생명빌딩에 자리한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의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2002)이나 청계천에 자리한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의 <스프링 (Spring)>(2006)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공공미술의 개념을 ‘장소특정성(Site Specificity)’으로 한정 지을 경우 공공미술이 갖는 다양한 가능성에 제약이 가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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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나단 보롭스키, 망치질하는 사람,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일반적으로 서구에서의 공공미술은 크게 네 단계의 변화를 겪어 왔다. 첫째, ‘건축 속의 미술(Art in Architecture)', 둘째, 공공장소 속의 미술(Art in Public Places), 셋째, 도시계획 속의 미술(Art in Urban Design), 넷째,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이다. 앞의 셋은 ‘장소특정성’을 전제로 한 전통적인 공공미술을, 마지막은 비전통적인 매체의 활용까지 넘나드는 새로운 장르로의 확장을 일컫는다. 이 구분은 미술이론가 수잔 레이시(Suzanne Lacy)에 따른 것으로, 이 명칭은 1980년대 후반 이후 미술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레이시는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에 관해 “전통적 또는 비전통적 매체를 사용하여 광범위하고 다양한 관객과 함께 그들의 삶과 관련된 이슈들에 관해 대화하고 상호 소통하는 시각예술”(Suzanne Lacy, 1995)이라고 정의한다. 주민참여라는 전제를 통해 공공장소에서의 소통과 공동선(共同善)을 발휘하는 것이 공공미술의 목적이라면, 1980년대 있었던 참여중심의 민중미술은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과 맞닿는 면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운동과 만난 미술을 모두 ‘공동체 기반의 미술(community based art)'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예술행위와 사회정치적 목표 사이에 작은 ‘의견차이’라도 존재한다면, 그 역시 공공미술의 목적에는 완전히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윤리적 미술경향이라는 전제 속에서 이 둘은 유사해 보이지만 민중미술은 개혁적 성향을 갖고 있기에, 다양한 견해를 수용해야 하는 공공미술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만큼 공공성에 대한 이해가 어렵다는 것이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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