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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그널]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그 때 그 시간의 리듬 속으로 ‘밀정’

입력시간 : 2020-11-13 10:17       최종수정: 2020-11-1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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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png

‘밀정’(김지운, 2016)은 시간에 관한 영화다. 국가가 주권을 잃어버렸던 수 십 년의 암울한 시간, 의열단이 일제의 폭압에 맞서는 치열한 항쟁의 시간, 한 인간이 조국의 독립과 자신의 안위 사이에서 갈등하는 각고의 시간이 이 작품에 켜켜이 담겨 있다. 또한 ‘밀정’은 의열단이 갈망하고 있는, 아직 오지 않았고 기약도 없으나 반드시 오리라 믿는 그 어떤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채산에게서 이정출에게로, 다시 학생의열단 선길에게로 이동하는 회중시계의 내연은 세대와 공간을 가로지르며 퍼져나가는 바로 그 시간에 대한 믿음과 닿아있기에 의미심장하다.

모그가 연출한 ‘밀정’의 음악은 거의 일관되게 이러한 시간의 다층적 의미를 내포한 채 진행된다. 시계 초침을 모티브로 한 규칙적 리듬은 김장옥 일행이 함정에 빠지는 첫 시퀀스에서도, 일본경찰과 의열단이 각자의 작전을 바쁘게 수행하는 와중에도, 숨 막히는 정찰과 혈투가 벌어지는 경성행 기차 안에서도, 동족상잔을 강요당하는 끔찍한 고문실에서도 중량과 세기, 템포를 달리해 등장한다. 힘찬 초침소리에서 때로 긴장한 심박처럼 육중하고도 빠르게 변이되는 이 리듬단은 다른 사운드 이펙트들과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드라마에 긴박감을 조성하고 음악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아날로그 시계의 소리는 디지털 시대의 관객들을 1920년대라는 시간 속으로 끌어들이는데 효과적이었다. 

이렇듯 영화 초반부터 말초신경을 자극하면서 관객의 심리를 선동하던 음악은 종반으로 치닫는 동안 직관을 넘어 이지력의 확장을 요구한다. 영화에 삽입된 ‘When You're Smiling'과 ’Bolero'는 1920년대 서양에서 발표된 곡들로, 서사 바깥의 공간을 인식하게 함과 동시에 서사 안의 상황과 대비시킴으로써 제3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When You're Smiling’의 느리고 차분한 선율과 아름답고 희망적인 노랫말은 의열단이 무자비하게 척결되는 몽타주 영상에 삽입되어 오히려 비극성을 부각시키는 기능을 한다. 

또한 반복적 멜로디에 악기가 하나씩 추가되면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Bolero'는 극의 절정을 예비하는데 기여한다. 뿐만 아니라 이 곡은 형식상 무수한 실패를 딛고 높은 곳으로 올라서고자 하는 의열단의 기조를 그대로 담고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밀정’을 한 단계 더 정교하게 세공시킨 탁월한 선곡 및 편곡이었다. 

모그는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음악감독 중 하나다. 유수의 영화상을 섭렵한 만큼 실력을 인정 받은지도 오래지만 그의 음악적 성취는 현재진행형이다. 비교적 최근작인 ‘마녀’(박훈정, 2018), ‘버닝’(이창동, 2018),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 홍원찬) 등에서도 적확한 음악으로 관객들에게 영화의 경험치를 높여준 바 있다. 김지운 감독과는 ‘악마를 보았다’(2010)부터 ‘인랑’(2018)까지 꾸준히 함께 작업해 오고 있다. ‘밀정’은 두 사람의 시너지가 가장 돋보인 작품 중 하나다. 앞으로도 한국영화음악의 지평을 넓혀주리라 기대한다. 

윤성은의 Pick 무비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의 고통에 관하여, ‘마틴 에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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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모든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의 ‘마틴 에덴’(2019)은 195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이런 도전 앞에 선 한 청년을 조명한다. 어릴 때부터 선원 생활을 해온 ‘마틴 에덴’(루카 마리넬리)은 폭행당하고 있던 한 부르주아 청년을 도와주는 사건을 계기로 그 집 식사에 초대받는다. 청년의 동생인 ‘엘레나’(제시카 크레시)에게 한 눈에 반한 마틴은 그녀처럼 교양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시집과 사상서들을 탐독한다. 마틴은 틈틈이 혼자 공부하며 작가가 되기를 꿈꾸지만 가난과 시대적 한계가 번번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마틴 에덴’은 잭 런던이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쓴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엘레나를 향한 열정만큼 펜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마틴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영화의 전반부라면, 후반부는 엘리트가 된 노동자, 혹은 부르주아가 된 프롤레타리아가 겪는 내적 혼란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마틴은 그토록 원하던 작가가 되고, 계급 투쟁과 개인주의에 관한 새로운 주장을 펼치며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장본인, 엘리나와는 오히려 요원해진다. 큰 저택에서 깨끗한 옷을 입고, 말로 돈을 버는 마틴은 자신의 삶과 사상을 일치시킬 수 없고, 그 간극은 자신을 향한 조소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불만, 그리고 비관과 허무주의로 이어진다.

‘마틴 에덴’에는 종종 이야기의 배경이나 인물의 심리가 자료 영상처럼 삽입되는데, 이 부분에서 삽입된 침몰하는 배의 이미지는 마틴의 심정을 정확히 대변해준다. 루카 마리넬리는 영리하고 순수한 청년에서 날카롭고 불손한 작가로 변해가는 마틴 에덴을 신들린 듯 연기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아름다운 영상미, 독특한 스타일, 매력적인 인물, 통렬한 주제의식을 두루 갖춘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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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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